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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ip to_ Middle East

레바논에서 시리아, 다시 요르단으로 국경 넘기

이전 글 - [trip to_ Middle East/Lebanon] - 레바논 (4) 수르(Sour)

 
 

 

 

 

포스팅에 앞서 미리 이야기하자면, 2010년의 12월 24일과 25일은 각각 레바논(Lebanon)에서 시리아(Syria)로, 다시 시리아에서 요르단(Jordan)으로 육로를 이용해 국경을 넘어간 일이 일정의 전부라서 딱히 첨부할 사진이 많지 않다. 그래서 크리스마스 당일과 이브의 포스팅은 하나로 묶었다.


또한, 중동의 유일한 비(非) 이슬람 국가 레바논을 떠나며 쓸쓸하고 재미없는 크리스마스를 보냈을 거라 예상되겠지만, 나에게는 이 시간이 인생에 다시 없을 특별한 성탄절의 경험이 되었다.

 


 
 

 

 

December 24, 2010

 

 
 

혼자 하는 여행인 만큼 나의 일정은 유연해서, 국가간 이동은 오늘이 되어도 내일이 되어도 괜찮지만 어제 느낀 레바논에서의 분노는 나로 하여금 가차없이 이 나라를 떠나게 만든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짐을 챙기며 호스텔 매니저에게 버스 편을 물어본다. 시리아 국경을 넘어 다마스커스(Damascus)까지 가는 버스는 하루에 세 대가 있단다. 그 중 오전 7시 30분 차는 이미 떠났고, 다음 차는 오후 3시 30분에나 있다고. 티켓이나 미리 사놓을 생각으로 호스텔에서 가까운 샤를 헬루 버스 터미널 (Charles Helou bus station)까지 걸어간다. 언제나처럼 내가 다가가기도 전에 먼저 접근하는 택시 기사들. 시리아 다마스커스에 갈 거라고 하니 오늘은 더이상 차가 없단다. 자신의 택시를 태우기 위해서는 무슨 거짓말이든 지어내는 그들이라는 걸 알기에, 나는 믿지 않는다. 그러나 국경을 넘는 세르비스, 즉 동승 택시와 버스의 가격이 크게 차이 나지 않아 택시를 이용하기로 한다.

 

육로로 국경을 몇 번 넘은 후 깨달은 사실이지만, 국경을 넘을 때는 돈을 조금 더 들이더라도 택시를 타는 편이 낫다. 레바논, 시리아 그리고 요르단 사이의 국경은 정말 가관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X-ray 촬영 기계 하나 없이, 의심 가는 짐짝은 직접 열어보는 수작업을 한다고 하면 상상이 될까. 버스보다 적은 인원으로, 택시 기사가 비자 받는 절차까지 도와주면 시간을 많이 줄일 수 있다.

 
 

시내의 던킨 도넛에서 간단히 아침을 하고, 호스텔에서 짐을 찾아 다시 버스 터미널로 가니, 아저씨 한 분이 말을 붙인다. 나에게 호객 행위를 하는 그들과 생김새가 다르지 않아 대충 무시하려 하는데, 어쩐지 영어가 너무 유창하다. 알고 보니 레바논과 시리아 혈통을 반씩 가진 미국인. 미군에서 30년 넘게 군의관으로 근무하다가, 2006년 레바논 전쟁 이후 지금까지 UN군을 통해 시리아와 레바논에서 진료활동을 하고 있다고 이야기 한다. 그리고는 무수히 많은 시리아와 레바논의 출/입국 도장, 군 은퇴를 증명하는 신분증을 꺼내 자랑스레 보여준다.

 

세르비스에 동승할 사람들을 기다리는 한참 동안 말벗이 되어준 아저씨.

 

 

 

 

 

 

 

딸이 자신을 보고 싶어한다며, 내년에는 미국으로 돌아갈 생각이라고 한다.

 

“아저씨도 따님이 그리우시겠어요.” 라는 당연한 질문 겸 위로에
 
“Well, yes or no”라는 어중간한 답이 돌아온다.


오랫동안 보지 못 한 자식이 그리운 건 마땅히 그러하지만, 30살 넘어 결혼까지 한 딸이 아직까지 심심하면 전화해 “돈 좀 부쳐달라”고 한단다. 그 전화 받기 싫어서 핸드폰까지 해지했다고. 그리고 또 한참 사위 흉을 본다. (미국 경제가 정말 어렵긴 한가보다.)

 

 

이어서 언어 이야기.
 
교과서와 방송에서 사용되는 표준 아랍어를 배웠지만, 현지에서 교육 수준이 낮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아랍어와의 괴리가 커서 고생 중이라고 한다.



 

그는 또 마지막으로 이 지역을 여행하며 새겨야 할 충고도 잊지 않는다.

“시리아에 도착하면 아무 물이나 함부로 마시면 안 된다, 택시 기사 등이 횡포 부리면 당장 경찰을 부르겠다고 협박해라”(시리아는 독재 국가인 만큼 경찰력이 굉장하다고) 등등, 나의 아버지가 해준 충고와 비슷한 이야기들. 다 큰 자식 흉봐야 하는 사연부터 시작해서, 나의 아버지와 비슷한 면이 많은 것 같다.

 

 

 
 

그렇게 이야기 꽃을 피우는 사이, 요금을 나누어 낼 인원들이 모두 모이고, 바로 출발!

 
 

산 길을 넘는 중간, 군인들의 검문이 있다.
 

역시 직접 찍지는 못 하고.

 

 

 

두어 시간 산자락을 넘으며

 

 

 

국경 통과.

 

앞으로도 마찬가지이지만, 국경의 불친절한 출입국 관리소 직원, 혹은 차창너머로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내는 무장군인의 사진 따위는 없다. 촬영이 금지되어 있을 뿐 아니라 그럴 정신도 없다. 국경에 다다르면 출국 수수료(이해하기 힘든 절차)를 내고 인지를 받는 일로 통과 절차를 시작한다. 출국 심사대로 가서 인지를 보여주고 도장을 받아, 다시 차로 이동하며 무장 군인에게 여권을 보여주면 경계 지역을 지날 수 있다. 다시 입국하는 현지의 통화를 환전, 입국 비자비를 낸 후, 인지를 받아 입국 심사대로 가서 도장을 받는다. 그리고 짐 검사(무작위 수작업)까지 마치면 국경 통과. 까다롭지만, 처음 밟아보는 절차가 아직은 신기하다.

 

 

 


 

다시 한 시간쯤 주행을 마치고 다마스커스(Damascus) 도착.

 

택시 문을 여는 순간 다시 현지의 택시기사들이, 레바논의 그들보다 조금 더 거칠게 나를 이끌려 든다. 미국인 의사 아저씨는 내가 걱정 되었는지, 손을 꼭 잡아주며 오늘 자고 갈 숙소는 있냐고 물어본다. 없다면 자신의 아파트에서 머물러도 좋다고. 너무 감사하지만 부담스럽기도 하고, 도시 중심에 있는 편이 나을 것 같아 작별을 고한 뒤 택시기사에게 짐을 내어준다. 나름 택시비를 흥정 한다고 하지만, 아직 현지의 택시 요금과 목적지에 대한 거리감이 없어 또 한 번 바가지를 쓴다.

 

 
 

이번 이동의 최종 목적지는 요르단의 암만(Amman).
 

하루 만에 이동할까 생각도 해 보았지만, 이동 경로 중간에 국경이 존재하니 거리에 비해 시간이 많이 걸린다. 이미 서너 시간쯤 차에 앉아 있어 몸도 뻐근하고, 해서 이 곳에서 하룻밤을 자고 내일 다시 출발하기로 한다.

 
 

론플에서 봐둔 Ghazal Hotel에 도착. (이 곳에는 호텔이라는 이름을 가진 호스텔이 많다.) 가격에 비해 시설이 괜찮다.

 

많이 어두워지기 전에 수크(souk)라도 돌아보자 싶어, 방에는 짐만 놔둔 채로 다시 길을 나선다. 그런데 문을 연 가게가 드문드문, 중동 내에서는 손에 꼽히는 시장이라고 해 잔뜩 기대했던 나에게 실망감을 안겨준다. 별 소득 없이 돌아와 호스텔의 스탭과 이야기 하다 보니, 오늘은 금요일이라 그렇다고. 그 동안 나는 이슬람 국가의 휴일이 금요일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

 

 

씻고 나오는 사이, 사람들이 방으로 하나 둘 씩 들어온다. 불량해 보이는 스페인 친구, 시리아 전역을 자전거로 여행한다는 아일랜드인 아저씨, 이집트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는 영국인 대학 초년생. 이렇게 중동의 호스텔에 묵어 좋은 점 하나는, 남다른 삶을 살아가는 독특한 이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점이다. 그들이 특별히 자신을 어필하려 노력하지 않아도, 한 명 한 명이 삶의 방향에 대한 작은 영감을 주곤 한다. 오늘 밤 이 남자들의 수다를 채운 이들 중, 특히 스페인에 살고 있다는 이 녀석은 아래 사진에서 볼 수 있듯

 

 

 

 

 

 

 

서부영화에서 할리데이비슨 오토바이를 타고 약탈을 일삼는 깡패처럼 생겼다. (하지만 나름 귀여운 구석도 가지고 있다.)

 

“크리스마스는 다가오는데 부모님은 베네수엘라에 계시고, 친구들도 전부 가족을 찾아 도시를 떠났어.
혼자 외롭고 슬픈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싶지는 않아서 여행을 시작했지.
오토바이와 블랙베리를 팔아 돈을 마련했어.”

 

이렇게 시작한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된다.

 

내가 요르단에 가면 페트라가 가장 기대된다고 하니까, 자신은 이미 그 곳에 다녀왔다며 직접 찍은 사진들을 보여준다. 페트라의 장관에 대해 일장 연설을 늘어놓고는, 시키지도 않았지만 카메라에 담긴 모든 사진들에 대해 설명을 이어간다. 카메라는 여행 사진을 지나서 몇 년 전 그가 다녀온 락 페스티벌 현장까지 보여주고 있지만, 그는 지치지 않고 음악에 대한 자신의 열정을 설명하며 다음 주제인 자신의 자동차로 넘어간다. 자동차를 어떻게 개조했는지 설명하기 위해, 현대자동차의 부품을 이용했다고 말 할 때 특히, 애쓰고 또 아이처럼 들떠있다. 나는 혼자 말 많은 사람을 싫어하지만, 이런 “불량 수다남” 과 이야기할 때에만 느끼는 재미란 게 있어 계속 듣기로 한다. 역시, 15년 전에 이미 헤어진 여자친구가 밀라노에 사는데 가끔 만나 재결합(?) 한다는 둥, 사해(死海)에 둥둥 떠서 마리화나 한 대 피워주면 기분이 그렇게 끝내준다는 둥, 그 친구의 외모에 어울릴 법한 그만의 무용담은 그렇게 끝을 모르고 계속되었다.

 
 

 

글이 쓸 데 없이 길어져 다른 이들의 이야기는 생략하지만,

국적도 연령대도 다른 네 명의 남자는 우울한 줄도 모르고 자신의 이야기들로 성탄 전야를 채워간다.

 

 
 

그리고 “Merry Christmas”

 

참 아기자기하게 재미있는 하루다.

 

 

 

 

 

 

 

December 25, 2010

 
 

이브에 이어 크리스마스, 또 한 번 국경을 넘는다.

 

26일 요르단의 수도 암만에서 ‘Topdeck’이라는 다국적배낭여행사의 패키지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여행을 시작하는 포스팅에서 잠깐 언급했지만, 나는 중동이라는 험한 장소에 오기 전까지 제대로 된 자유여행 경험이 없었고, 그런 나를 나의 아버지는 심히 걱정하여 여행사 이용을 강력하게 설득해왔다. 결국, 부모 이기는 자식 없다고(?!), 도시간 이동이 가장 힘들다는 요르단 일정을 여행사와 계약했다. 나의 일정과 맞물리는 패키지 날짜가 그 일정의 가운데 껴 있었고, 그 때부터 나의 이정은 꼬이기 시작했다. 유럽에서 중동으로 들어가는 항공편 대부분이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에 집중되어있고, 레바논에서 요르단으로 이동하는 항공권들은 턱없이 비쌌기 때문이다. 이 것이 레바논에서 육로로 시리아를 거쳐 요르단으로, 다시 역순으로 레바논까지 일정을 마치는 이상한 루트의 이유가 되었다.

 

 

어쨌든 아버지의 예상이 그대로 적중하여 나는 레바논에서시달리고 있었고,
처음으로 혼자 떠난 여행에서 적잖이 당황하고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 각국의 젊은 층을 대상으로 “Topdeck”이 조직하는 여행은 이제 내심 반갑기도 하다.



 

다마스커스의 Al-Samariyeh Terminal로 향해 어제와 마찬가지로 세르비스 택시를 이용한다. 오늘은 아버지 뻘 되는 미국인 아저씨 대신, 나와 동년배인 대학생 한 명과 말동무가 된다. 호주에서 온 이 친구는 나와 똑같이 역사와 정치를 전공하는데, 아랍어까지 배운다고 한다. 그는 여행 겸 어학연수로 베이루트와 다마스커스에서만 무려 한 달을 보내고, 지금 향하는 암만을 거쳐 인도에서 또 한 달, 다시 홍콩과 베이징을 여행하고 호주로 돌아갈 계획이라고. 그나마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사람들은 아랍어 정도는 배워봐야 영어와 이탈리아어를 공부하는 아시아 학생의 심정을 조금은 이해하는 것 같다.

 그와 정신 없이 떠들다가, 조금 눈을 붙이다가, 그렇게 끝없는 도로를 달린다. 

 

 

 

어제와 똑같은, 이제는 거북살스러운 절차를 밟아 국경을 넘고, 합하여 다섯 시간쯤 이동했나 보다. 암만 어딘가에 내리긴 했는데, 내가 알고 있는 건 첫날 밤 Topdeck이 제공하는 호텔의 이름 뿐이다. 다시 택시를 잡아 호텔의 이름을 불러주고 가격을 이야기한다. (암만의 택시는 미터기를 사용한다. 나는 첫 날부터 불법으로 영업하는 택시를 이용한 셈이다.) 택시 기사가 길을 가다 세우고 행인에게 무언가를 물어본다. 아랍어를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호텔 이름이 반복된다. 뻔히 행인에게 길을 물어보고 있는 것이다. 내가 물어봤을 때에는 아는 척을 하고, 자신도 어딘지 모르는 곳을 향해 가격까지 흥정을 하다니. 돈에 대한 집착이라는 면모 만큼은, 중동의 택시운전사들을 존경하게 된다. 그렇게 행인들에게 길을 묻기를 몇 번, 이제는 아예 나까지 대동하고 길가의 상점에 들어간다. 내가 가진 번호를 이용해 호텔에 전화를 걸더니, 이제는 확실히 알았다는 듯 미소를 보이며 출발한다.

 
 

그렇게 어렵게 도착한 호텔, 택시 기사는 예정된 수순이라는 듯 자연스럽게 흥정한 돈의 배를 요구한다. 영어 한 마디 못하지만, “내가 너 때문에 사람들한테 물어보고, 전화까지 해서 여기까지 왔잖아” 라는 뜻을 전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아니, 그게 왜 내 잘못인가. 애초에 아는 척은 왜 하나.

그래도 이제는 이런 상황이 익숙하다. (물론 요구하는 돈을 준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아, 드디어 쉬겠구나,’ 라는 마음으로 호텔 리셉션에 “Topdeck이라는 여행사가 제 이름으로 방을 예약했을 거에요”라며 여권을 내밀자 그런 예약자 명단은 없단다. “그럴 리가 없는데요?” 라며 다시 확인을 해 보라고 하자, 아예 여행사에 전화를 건다. 몇 마디 이야기하고는 나를 바꾸어 준다. 여행사 Topdeck의 에이전트는 내가 있는 그 곳이 아니라며 다른 호텔의 이름을 불러준다.

 

“호텔이 바뀌었으면 다시 이메일이라도 보냈어야지 @@#$^%#$%@!!!

 

다시 택시를 잡는다. 리셉션에 부탁해서 택시 기사에게 목적지를 확실히 알린다. 벨보이는 손님도 아닌 나의 부탁에, 택시 기사가 미터기를 제대로 켜는지까지 확인해준다. 역시 현지인을 대동하니 수월하구나. 그렇게 다시 도착한 호텔. 전번과 같은 멘트에, 바로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던 가이드를 소개해준다. 짧게 인사하고 방에 들어온다.

 
 

아니 이게 뭔가. 이게 진짜 호텔이란 거구나.

 
 

냄새 나고, 춥고, 여섯 명씩 함께 자던 그 호스텔과는 다르구나, 라는 생각에 한동안 가방 속에서 꺼내지도 않던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는다.


 

 

 

 

 

촌스럽게 호텔방에서 사진 찍고 있냐는 생각을 하겠지만,

유럽의 그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이 열악한 중동의 호스텔에서 벗어난 나는 진심으로 감동했다.

 

 

그러나 그 감동은 잠시 뒤로 미루고, 배를 채우기 위해 암만의 Downtown을 찾는다.

 
 

택시 기사 이야기는 이제 지겨울 법도 하지만, 이번 역시 생략할 수가 없다.


요번 기사 아저씨는, 다운타운까지 가는 길에 아주 멋진 광경이 있으니 잠깐 보라며 차를 세운다. 기지개 한 번 하고 다시 차에 타려고 하는데, 자신도 차에서 내려 나에게는 선뜻 사진도 찍으라고 손짓한다.

 

‘하지만, 미터기는 돌아가고 있잖아?’

 

 

 

 

이렇게 대충 찍는 시늉이나 하고 (비해, 사진은 꽤나 잘 나왔다.) 얼른 가자고 말하며 차에 올라탄다.
 

택시 기사와의 실랑이는 이제, 이 정도쯤 코믹해졌다.



 

도착한 암만의 다운타운은 이름에 걸맞는 중심가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리 늦은 밤도 아닌데 영업중인 상점은 드물고. 그래도 소기의 목적에 따라, 론플에 소개된 맛집을 찾아 나선다. 잠시 걸어 지도상으로 맞는 곳에 오기는 왔는데, 해당 음식점의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사방을 두리번거리고 있으니, 이제는 지겨운 관광지 레퍼토리가 또 들려온다.

 

Hello~ how are you~ from japan~?” (실제 발음은 헤로~하우아류~브롬 야방~? 이다.)


“I’m Korean”
 

Oh Korea~ good~ north?” (그들은 꼭 남한인지 북한인지를 물어본다.)
 
 

“South”
 

Good~ may I help you?
 
 

이런 제안은 당연히 미소를 지으며 ‘No, thanks’라고 거절하고 본다. 이 곳 관광지에서의 ‘HELP'는 ‘장사’를 의미하기 때문에.
 
 

그는 포기하지 않고 “why~ I can help you~” 라며 귀찮게 군다. 어떻게 나올까 궁금하기도 해서 식당의 이름을 한 번 말해 보았더니, 코앞에 보이는 건물을 가리키며 걸걸하게 웃는다. 그 식당은 아랍어로만 쓰인 간판을 달고 있어 내가 찾을 수 없었던 것. 지도를 재차 확인하며 머뭇거리자, 그는 문 앞까지 나를 데려다 준다. 이런 친절을 받으니 그 동안 “도와주겠다”는 말을 불쾌하게 만든, 관광객의 돈을 노리는 그들이 더욱 원망스럽다. 백에 하나쯤, 선의든 호기심이든 진심으로 도와주려는 그들과  눈도 안 마주치고 거절하는 내가 나쁜 사람이 되는 거니까.
 

여하튼, 이 곳 암만 다운타운의 식당은 내가 언젠가 찾아갔었던 을지로 골목의 골뱅이 맥주 집을 떠오르게 만든다. 허름한 골목, 좁은 상점, 골목을 반쯤 차지하는 테이블과 의자들. (테라스라고 부르기에는 변변치 못 한)

 

 

 

 

 

 

 

 
 

똑같이 메뉴도 없다. 자리에 앉으니, 주인장은 인사 한 마디 없이 “Hummus?” 라며 유일한 식단을 주문할 건지 확인한다. Hummus는 중동 지방 대표 음식이다. (다만, 나는 음식을 앞에 두면 종종 카메라의 존재를 망각한다. Hummus는 이어지는 포스팅 언젠가 첨부할 일이 있을 듯 하다). 문자 그대로 ‘던져주는’ 빵과 다진 고기. 소스를 이용, 취향대로 만들어 먹을 수 있다. 종일 굶다가 처음 하는 식사라 그런지, 여행 중에 먹은 음식 중 가장 맛있게 해치운다. 주인장은 친절하지 않지만 전혀 불쾌하지도 않고, 식당 위생 상태가 그리 좋아 보이지도 않지만 밥맛이 돈다. 친절하거나 깔끔하면 오히려 이상할 것 같은 그런 분위기. 처음 방문하는 먼 나라 요르단의 식당, 신기하게도 한국의 맛집에서와 비슷한 정감을 느낀다.


한창 험머를 즐기는 중, 우리나라의 다대기처럼 보이는 빨간 소스가 눈에 띈다. 듬뿍 발라 입에 구겨 넣는 순간, 예상치 못 한 강렬한 매움에 내 얼굴도 구겨짐과 동시에 빨개졌나 보다. 나를 힐끔 힐끔 주시하던 현지인들의 웃음이 터져 나오고, 그들 중 하나가 “Hot?” 이라고 물으며 껄껄댄다. 웃지도 울지도 못 하는 상황. 그는 이어, 썰어놓은 양파를 가리키며 먹지 말라고 귀띔해준다. 웃으며 고맙다고는 했지만, ‘내가 이래 뵈도 양파가 뭔지는 알거든?’ 하는 거만한 표정을 살린다. 그리고 줄기 채로 내온 처음 보는 풀 종류를 하나 하나 떼 먹으며 이 풀은 향기롭구나, 라고 생각하는 순간. 현지인들이 다시 한 번 참지 못 한 웃음을 뱉어낸다. 그리고 찻잔을 가리키는 그들. 그 ‘풀 종류’는 다름 아닌 민트다.

 

 

그렇게 신나는 크리스마스의 만찬을 마치고 돌아온 방. 긴긴 샤워를 마친 뒤 헐리웃 영화를 상영하는 티브이, 그리고 침대 옆 탁상 조명을 켜놓고 가이드북을 훑는다. 정말 별 것도 아닌 일들이 새삼 즐겁다. 무엇보다도 난방의 존재에 신나서는, 온도와 바람 세기를 최대로 해놓고 잠들었다가, 새벽 찜통이 된 방에서 잔뜩 땀을 흘리며 깬다. 레바논의 얼음장 같은 호스텔을 추억하며, 그래도 좋다고.

이렇게 호텔 따위에 감동하는 나를 보며, 스스로를 백팩커라 부르는 일이 이제는 조금 민망해지기도 한다.

 


 

2010년 12월 24일, 25일 여행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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