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9월 10일, 명필름 아트센터

 

 

어렸을 때에는 아버지를 따라서 영화를 보러 다녔다. 그 시절에는 대형 멀티플렉스가 없었다. 신문에서 상영시간표를 보고 현장에 찾아가 표를 구매했다. 간혹 전화를 걸어 예매를 하기도 했다. 지금처럼 스마트폰으로 티켓을 보여주고 입장 확인을 한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시절 이후 처음으로 독립상영관을 찾았다. 봉준호 감독의 《옥자》를 보기 위해. (영화를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러했다.)

 

물론 불편했다. 많은 독립상영관들이 인터넷 예매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 않았다. 서울 시내 영화관의 스크린과 영사기, 사운드는 점점 커지고, 선명해지고, 입체적으로 진화해가는데, 독립영화관은 그렇지 않은 듯 했다. 그나마 가장 좋은 환경을 찾겠다며, 《옥자》 상영관 중 유일하게 Digital 4K와 Dolby Atmos 시스템을 갖춘 파주의 명필름 아트센터를 찾아갔다. 자차로 1시간 거리였다. (《옥자》가 멀티플렉스 3사에 걸리지 않게 된 사태에서 딱히 비난 받아 마땅한 사람은 없다. 넷플릭스도, 멀티플렉스도, 붕준호 감독도 각자의 이익을 위해 내린 결정일 뿐이다.)

게다가 《옥자》는 범작이다. 굳이 고생스럽게 많지도 않은 상영관 찾아가서 관람할 만한 작품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주에 다녀온 보람이 없지는 않았다. 영화보다 영화관이 더 좋았기 때문에.

 

이 곳은 영화사 '명필름'에서 파주출판도시 끝자락에 지은 문화공간이다. 물론 대기업 자본으로 운영되는 멀티플렉스에 비해 기술적으로 뛰어난 환경을 제공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장점들이 있다.

 

1. 음식물 반입을 허용하지 않는다. 팝콘 냄새, 바스락 거리는 소리 없이 영화를 즐길 수 있다.

 

2. 엔딩 크레딧이 모두 끝날 때까지 조명을 켜지 않는다. 평소 영화의 마지막 사운드트랙을 들으며 올라가는 크레딧을 보고 있노라면, 앞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화면을 가리기 일쑤이다. 뿐만 아니라, 짧은 시간 안에 다음 상영을 준비해야 하는 영화관 직원이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들고 쏘아본다. 마치 '너만 씨네필이냐'며 재촉하는 것 같아 엉덩이를 옴짝달싹하게 된다. 이 곳에서는 그런 기분을 느낄 필요가 없다.

 

3. 공간이 좋다. 상영관 입구에는 명필름에서 제작한 영화들의 소품 등이 전시되어 있다. 영화관 윗층에는 카페가 있고, 파주출판도시 답게 영화를 주제로, 소재로 하는 책을 열람할 수 있다. 마침 읽어보고자 마음먹었던 책이 있어 반갑다.

 

 

 

전에 이 공간을 모르고 파주출판도시에 들렀을 때도 느꼈지만, 여건만 된다면 근처에 살고싶다는 욕심이 생기게 만드는 동네다. 이렇게 오늘도, 언젠가 서울을 떠나겠다는 결심을 한다.

 

 

+) 영화관에서 대각선 앞쪽으로 대머리 아저씨가 앉으셨다. 영화관의 좌석별 높이 차이가 심하게 낮은 편도 아니었는데, 반사되는 빛 때문에 상영 내내 거슬렸다. 탈모인들을 모욕할 생각은 없지만, 각자 매너 차원에서 해결 방법을 강구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