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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에서 가장 중요한 로마 유적을 간직하는 도시
발벡(Baalbek)
December 21, 2010
밤에 잠을 설쳤다.
가난한 배낭여행객이 베이루트에서 선택할 수 있는 숙소는 둘 중 하나라고 보면 된다.
그 중 [Pension Al-Nazih]는 도미토리 5인실의 침대 하나를 하루에 17$ 씩이나 받으면서 난방을 전혀 안 해 준다.
그래도 나머지 하나, [Talal’s New Hotel]에 하루를 묵은 뒤 이 곳으로 잠자리를 옮겼다는 이에 의하면 이 곳은 불가피한 차악이라고.
긴 팔 티셔츠에 두꺼운 니트, 기모 후드를 입고 그 위에 담요를 덮고 잤지만, 밤에 떨다가 깰 정도로 춥다.
그래서 나는 감기 기운에 정신이 몽롱하지만 길을 나선다. 짧은 레바논 일정을 날릴 수는 없으니까.
레바논에는 Service Taxi[세르비스] 라는 교통수단이 있다.
자가용 승용차를 마치 버스처럼 운행한다. 동승은 기본, 택시가 아니기 때문에 목적지에서 가까운 거점에 내려준다. 물론 요금은 택시 요금의 절반 이하. 오늘부터 이 Service Taxi를 시도한다.
발벡에 가기 위해서 들러야 하는 Cola Bus Station은 베이루트 중심에서 조금 떨어져 있다. 운 좋게 정류장행 세르비스를 잡아 탄다. 버스를 타고 어디에 갈 거냐고 묻는 기사에게 발벡에 간다고 이야기한다. 그러자 Cola Bus station에서 출발하면 중간에 Zahle에서 버스를 갈아타야 하니, 경유하지 않고 바로 갈 수 있는 정류장으로 데려다 주겠다고 한다. 그리고 목적지에 도착하자 마자 그는 원래 흥정했던 돈의 두 배를 요구한다. Cola Bus Station까지 왔던 만큼 또 왔으니 두 배란다. 여기서 또 하나의 교훈을 얻는다. 관광객에게 무언가를 제안하는 데 공짜는 없다고. 기사가 내가 타야 하는 버스를 찾아서가격까지 확인해 주는 모습을 보여, 그와 싸우기를 포기하고 한국 돈 2,000원 쯤 더 주고 나온다.
레바논의 버스는 대부분 대형버스가 아니라 흔히 우리가 ‘봉고’라고 부르는 15인승 정도 되는 승합차, minibus다.
이렇게 좁게 좁게 앉아서 도시간 이동을 하며, 현지인들은 중간 중간에 내려야 할 곳에서 기사를 불러 차를 세운다.
갑자기, 내 옆에 앉은 할머니가 자연스레 담배를 꺼내 물고, 불을 붙인다.
‘으잉?’ 나에게도 한 대 태우겠냐며 권하신다. 정중히 거절하고 이래도 되는 건가, 라고 생각하는데 다른 이들도 창문을 열고 담배를 태운다. 바닥에 재를 털고, 흡연이 끝나면 창문을 닫는다.
또 이 곳은 일교차가 크다.
어제 낮의 따듯한 날씨를 기억하며 얇은 재킷 하나만 걸치고 길을 나섰다.
아뿔싸. 발벡에 가기 위해서는 산을 넘는다. 그리고 그 산은 겨울이 되면 스키장도 개장하는 높은 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버스 승객들은 끊임없이 담배를 피우며 창문을 연다.
창문을 열 때면 온 몸이 시리고, 창문을 닫으면 숨이 막힌다. '확실히 이 곳이 선진국은 아니구나', 라고 느낀다.
2시간쯤 달려 발벡 도착. 창 밖으로 유적이 보이기 시작한다.
처음 접하는 로마제국 시대의 신전. 이탈리아에 살고 있으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이 곳은 레바논이다.
레바논에서 유독 많이 보이던 올드 벤츠, 그리고 낙타.
길가에 지나다니는 올드 벤츠는 대부분 택시들인데, 나도 한 대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만큼 멋있다.
마을 초입, 아직 발굴이 완료되지 않은 유적들.
철조망으로 입장을 제한한다. 이 곳 사람들이 살고 있는 바닥 밑에는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유적들이 자리잡고 있는 게 아닐까,
아침부터 아무 것도 먹지 못 했기 때문에, 유적은 입구만 확인해두고 배를 채우기 위해 마을에 들른다.
왠지 우리나라였다면 ‘읍내’라 부를 것 같은 시골마을.
베이루트 시내에 비해 적어도 20년은 뒤떨어진 듯한 모습. 분명 낯선 모습이지만, 좁은 차도와 2-3층 건물들, 그리고 그 안에서 촌스러운 옷가지나 생활용품을 파는 모습이 우리나라의 시골 모습과도 비슷한 면이 있어 정겹다.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한참 바라보는 것만 빼면.
론플에 소개된 샌드위치 집을 찾아서.
이렇게 배를 채우고, 다시 신전 들어가는 길.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입장.
2000년 전 이 곳을 드나들 수 있었던 사람들도 나와 비슷한 마음이었을까.
입구[Propylaea]
입구를 지나면 나오는 Hexagonal Court.
멀리 보이는 쥬피터 신전의 기둥
가이드 해주겠다던 아저씨. (물론 공짜는 없다.)
고대史에 나는 도저히 흥미가 생기지 않는다.
그럼 여기까지 와서 왜 돌덩이들을 보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그래도 볼 만한 가치를 가진 spectacle이라고 이야기 할 수밖에.
“그래서 말인데, 아저씨. 그렇게 궁시렁 거리면 여행객들이 기분 나쁘죠.” 라고 이야기 해줬어야 하는데.
Hexagonal court를 지나면 펼쳐지는
Great Court.
(이게 될까?라고 생각하며 수평으로 앵글을 바꿔가며 사진을 찍어봤는데,
수동으로 파노라마를 만드는 방법은 의외로 쉽고 간편하다.
물론 삼각대가 있다면 위 아래로 잘리는 부분 없이 더욱 좋은 비율의 파노라마를 만들 수 있다.
참고)
이게 다 뭔가? 싶다면, 아래 사진으로.
디테일은 이 정도.
Exedrae
Pool.
햇볕이 닿지 않는 길은 아직 얼어있다. 그리고,
.
저 멀리 쥬피터 신전이 홀로 빛을 받으며 웅장함을 자랑하고 있다.
신전이라고는 하지만 남아있는 것은 기둥 여섯 개가 전부. 나머지는 전부 지진 등으로 인해 소실 되었다.
‘터’만 남은 신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곳으로 전 세계의 여행객을 끄는 이 돌덩이들은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기둥이라고 한다.
"하늘도 내가 레바논 일정의 하이라이트를 방문하는 걸 아는구나", 라고 착각할 만큼 파랗다.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이 기둥의 크기를 짐작케 할 수 있는 사진은 한참 더 밑에.
바쿠스 신전(Temple of Bacchus)이 훌륭하게 보존되어있다.
여러모로 그 이름이 애석한 바쿠스 신전.
바쿠스 신에게 봉헌된 신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바쿠스 신전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고,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보다 거대함에도 불구하고, 바로 옆에 위치한 여섯 기둥에 비교당해 “작은 신전”이라는 별명을 가지게 되었다.
신전 입구
신전 내부
바쿠스 신전을 나와 다시 쥬피터 신전으로 향하는 길.
제자리를 찾지 못 한 조각들은 훼손 정도가 심한 경우, 박물관으로부터도 선택 받지 못하고 어정쩡한 위치에 늘어서있다.
따사로운 햇빛을 온 몸으로 받고 있자니 세계문화유산 위에서도 솔솔 잠이 온다.
그러고 20분쯤 지났을까, 한 무리의 브라질 단체 관광객들이 몰려온다.
잘 됐다 싶어 유적의 주인공 쥬피터 신전과 바쿠스 신전을 배경으로 증명사진 한 컷 찍고 돌아가기로.
친절해 보이는 아주머니께 부탁했더니, 기둥이 한 화면에 안 잡힌다며 한껏 자세를 낮추어 몇 장 찍어주신다.
그러던 중, 옆에 있던 예닐곱 살 쯤 되 보이는 딸내미가 자기가 해보겠다고 어머니로부터 카메라를 빼앗는다.
‘뭐야 너… 카메라 떨어뜨리지 마…’ 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막상 사진 정리를 하다 보니 그 아이가 찍은 사진이 가장 낫다.
그렇게 발벡을 뒤로하고, 콧물을 찡찡거리며 베이루트로 돌아온다.
해가 저물 즈음 시내에 도착했지만 컨디션이 너무 안 좋아 숙소에서 잠깐 쉬기로.
침대에 뉘였던 몸은 그대로 저녁 시간을 훌쩍 넘길 때까지 몸살 기운을 이겨내지 못하고 잠에 빠져 있었다.
같은 방을 쓰게 된 아저씨 한 명과 인사한다.
이란에서 살다가, 정치적 자유를 찾아 나라를 조국을 떠났다고 한다.
이 곳의 UN 사무실을 찾아서 북미지역으로 망명을 신청하기 위해 왔다고.
나에게 한국의 상황을 묻는다. 민주화는 꽤나 오래 전에 이루어졌다고 하니, 삼성과 LG 레퍼토리를 읊으며 찬양에 가까운 어조로 한국이 부럽다고 이야기 한다. 테헤란로 이야기도 하고, 이란의 문화 유적 이야기도 조금 나누다가 배가 고파 길을 나선다.
Gemmayzeh라 불리는 지역의 번화가.
분위기는 홍대입구 합정역 근처, 어디 조용한 뒷골목 쯤과 비슷한데, 거리는 무척 짧다.
론플에 소개된 레스토랑 중 적당해 보이는 곳에 들어간다.
그런데, 나의 입장에 10명 쯤 되는 사람들이 모두 하던 일을 멈추고 나를 바라본다.
그 상태로 몇 초쯤 지났나 보다.
할 말을 잃은 종업원에게 자리를 안내해 주겠냐고 묻는다.
바로 그 때, 입구 바로 옆 테이블에 앉은 소녀 둘이 합석을 제안한다.
속으로 ‘땡큐!!!!!!’를 외치며 자리에 앉아, 추천 받은 메뉴를 주문한다.
런던에서 패션 공부를 하다가 만났다는 두 명의 체코와 레바논 대학생. 크리스마스 방학을 베이루트에서 함께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대화가 썩 재미있지는 않아서, 식사를 마치고 바로 내 몫을 지불한 뒤 나온다.
길을 한 바퀴 돌아보고 숙소로 돌아갈 생각을 하고 있는데, 어느 바 안에서 한 무리가 창문을 두드린다. 친구라도 만난 것처럼 반가운 얼굴을 하며 얼른 들어오라고 손짓한다. 얼떨떨해하는 나에게 그들은 레바논 행 비행기에서 내 뒷자리에 앉아 있었다고, 신기한 인연이라며 반겨준다. 그들은 이렇게 또 합석을 권하여, 나는 베이루트에서 1시간 만에 합석을 두 번이나 경험하는 영광(?)을 경험하게 되었다.
이들의 국적은 프랑스, 출신은 레바논, 공부는 이탈리아, 거주는 스위스 따위의 배경을 가지고 있어 어디 출신이냐고 묻는 질문을 무색케 한다. 이 쪽과의 대화는 꽤나 유쾌하다. (역시 알코올 때문인가…) 레바논에 온 한국인이 신기한가 보다. 역사와 정치를 공부한다고 했더니, 연구차 왔느냐고 묻는다. 그냥 방학이라 놀러 왔다고, 레바논의 정치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다며 이슬람과 정치에 대해서 조금 묻자, 십 수년을 이 곳에 살며 매일 신문과 뉴스를 봐도 모르는 게 이 곳 정치란다.
페이스북에 업데이트 했더니
친구들로부터 중동 현지인 같다는 칭찬을 들은 사진.
이틀 만에 현지인 포스를 발산하다니, 적응을 잘 한 건가.
그렇게 그들로부터 술까지 한 잔 얻어먹고 다시 숙소로.
‘대부’ 말론 브란도의 사진을 간판으로 한 이탈리안 레스토랑까지, 각자 나름의 분위기를 가진 식당과 술집들이 눈에 띈다.
그리고 그 끝에는, 모스크가 불을 밝히고 있다.
다음 글 - [trip to_ Middle East/Lebanon] - 레바논 (3) 베이루트- Achrafiye, A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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