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trip to_ Middle East/Lebanon

레바논 (4) 수르(Tyre; Sour)

이전 글 - [trip to_ Middle East/Lebanon] - 레바논 (3) 베이루트- Achrafiye, AUB






December 23, 2010

 


 

힘든 밤을 보내고 맞는 아침.
 
 

밤새 기침하고, 목이 부어 숨 쉬기가 힘들 정도였다. 최근 몇 년간 겪은 최악의 감기다.
 

그나마도 잠들만 하면 나와 같은 방을 쓰는 사람들이 한 명씩, 한 명씩 들어와서 잠을 방해한다.


 
 

눈을 뜨니 머리가 지끈거린다. 시계를 보니 10시.

‘오늘 멀리 가는 날인데…’

 

 

서둘러 준비하고 나가서 PAUL에 들러 샌드위치를 하나 사 든다. 코가 막혀 맛조차 느껴지지 않는 샌드위치를 오물거리며 손을 흔들어보지만, 오늘은 Cola Bus Station까지 가는 세르비스가 잡히지 않는다. 울며 겨자먹기로 비싼 개인택시를 잡는다.

 

 
 

 

 

Cola Bus Station.

말이 좋아 버스 터미널이지, 고가도로 밑에 봉고 몇 대 주차시켜놓고 터미널이란다.

 
 

 

 

 

 

사이다(아랍어 Saida, 영어 Sidon)행 버스.

오늘도 승객들은 버스를 너구리 굴로 만든다.

 

 

 

 

 

 

Saida는 오늘의 목적지 수르(아랍어 Sour, 영어 Tyre)까지 가는 중간에 환승을 제공해 줄 도시이다.
 

실은 Saida에도 볼거리가 꽤 있기 때문에 두 도시를 묶어 하루 일정으로 계획했었지만, 몸 상태가 허락치 않는다.

 

 

 


 

 

 

버스는 해안 도로를 따라서 달린다.
 

해안 도로가 이렇게 흉하기도 쉽지 않은데.

 

 

 

 

 

한 시간을 조금 넘겨 Saida 도착.


 

 

 
 

도시 분위기가 내가 상상한 ‘중동스러움’에 가깝다.
 

신나서 도시 이곳 저곳을 사진으로 남겨둔다.

 

 

 

 

 

 

Saida↔Beirut / Saida↔Sour 버스가 각기 다른 터미널에서 발착한다.
 

출발이 늦어 마음은 급한데, Sour행 버스를 찾느라고 애를 먹는다.

 

 

 

 

 

 

 

처음으로 레바논에서 제대로 된 ‘버스’를 타 본다. 앞으로 이어지는 4주간의 중동 여행 중에도 이렇게 좋은 버스는 탈 일이 없었다.

 

 

버스에서 선크림을 덧바르고 있으니 앞좌석의 흑인 아저씨가 나를 신기해한다. 바디 랭귀지를 이용해 자기도 발라보고 싶다는 뜻을 잘도 전한다. 얼굴에 떡칠을 시작하더니, 더 달라고 3번쯤 이야기해 자신의 대머리와 목까지 완벽하게 자외선을 차단해주신다. 나는 괜히 무서워서 싫단 말도 못하고.

 

 

 

 

 

 

고개를 처박으며 또 한 시간쯤 졸고 있으니 목적지인 Sour에 도착한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UN군이 보인다.


이스라엘 국경과 가까워, 전쟁으로부터 파괴의 정도가 심했던 이 도시에는 UN군의 상당수가 주둔해있다.
 

우리나라의 동명부대도 UNIFIL의 일원으로 근처에 주둔해 있다고 한다.
 

카메라를 빼앗지는 않을까 싶어 소심하게 찍어본 UN군 아저씨. (사진 오른쪽 모서리)

 
 

 평화유지군이 주둔해야 할 이유가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무서운 느낌이 든다.

 

 


 

 

 

버스 터미널 근처, 노점상들이 줄을 지어 있다.

 


 

Sour의 유적은 서로 떨어진 두 부지에 나누어져 있다.
 

Al-Bass, Al-Mina Archaeological site가 그들.
 

버스 터미널과 가까운 쪽에 위치하고 크기도 더 작은 Al-Mina를 먼저 살펴보기로 한다.

 

 

 
 

 

 

 

Al-Mina 가는 길, 조금 떨어진 곳에도 이렇게 작은 사적이 존재하지만
 

그 흔한 펜스 하나 없이 이렇게 방치되어 사적지인지 쓰레기장인지 분간할 수 없게 되었다.
 

안타까운 후진국의 현실.

 

 

 

 

 

 



 

Al-Mina Archaeological Site

 

로마제국과 비잔틴제국 시대의 Sour를 모두 포함하는 발굴지.

 

 

 

 

 

 

이 곳 역시 현장을 보존하는 울타리는 따위는 없지만 표를 사고 들어간다.
 

입구를 지나 내가 서 있는 이 곳은 시장의 기능을 하던 Agora의 일부로 추측된다고 한다.

 

 

 

 

 

 

항만이 존재하던 곳을 향해 이중으로 열주들이 늘어서있다.

 

 

 

 

 

 

 

 
 

여러 고대 유적을 보고 느끼건대, 유적이 바다와 나란히 존재하면 그 아름다움은 갑절로 느껴진다.

 

 

 

 

 

 

 


 

유적의 끝, 바다.
 

물이  참 맑다.

 

 

 

 

 

 

그러나 바다 쪽에서 유적을 바라보게 되면, 흉하게 재건중인 도시가 배경이 되어 감상을 망친다.

 

 

 

 

 

 

바다를 향해 걸어온 대리석 보도는 로마 시대까지,

 

 

 

 

 

모자이크로 만들어진 거리는 비잔틴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유적 가운데, 부족한 나의 역사적 상상력을 보충해주는 야자나무.

 

 

 

 

 

 

 

 

 

 

그리고 그들로부터 조금씩 멀어지며.
 

유적과 바다, 석양이 어우러지는 분위기는 상상 그 이상이다.

 
발도장만 찍고 옮기려던 곳에서 발을 떼지 못 하게 되었다.

 

 

 

 

카메라의 설정을 조금씩 바꿔주는 것만으로도 다른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었던, 너무 아름다웠던 하늘.

 

 

 

 

 

 

 

 

 

다음 목적지인 Al-Bass로 장소를 옮기는 길.
 

이미 매표소를 지나쳤지만 앞에서 말했듯, 담조차 없는 이 유적이 계속 눈길을 붙잡는다.

 

 

 

 
 

 

 

 

 

 

 

시내, 현지 여성의 쇼핑.

 

 

 

 

 

 

 

 

그리고 아랍어의 코카콜라.

 

 

 

 

하늘이 저무는 데 가속도를 내기 시작한다.

 

발걸음에 속도를 조금 붙이려는데, 유적 옆에 위치한 팔레스타인 난민 캠프를 지나게 된다.

 

 

 

 
 

난민 수용소라는 타이틀에 살짝 겁이 나기도 하지만, 두려움보다 큰 호기심에 골목 이쪽 저쪽을 살핀다.


 

 

 

 

 

 

 

정상적인 가옥의 형태를 갖추지 못한 곳들이 보인다.

 


이 캠프를 따라서, 도시의 두 유적 중 메인으로 보이는 Al-Bass Archaeological Site 를 향해 잘 찾아가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어느새 길을 잃어버렸다. 론플 지도와 길을 번갈아 보며 한참을 걸으니 큰 길이 나오지만 낯설다.

 

 

이런, 더이상 헤맬 시간이 없다.

 

이렇게 길가에서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당황하고 있으니, 지나가는 버스마다 나를 태우려고 난리다. Sour 도시를 순환하는 버스에는, 그 옛날 서울에도 있었다던 버스 안내양과 그 역할이 비슷한 삐끼 도우미가 한 명씩 존재한다. 그들 중 하나에게 내가 가는 곳을 이야기하니 얼른 타라고 손짓한다. 나는 그에게 내려야 할 곳에서 알려달라고 당부한다.

 


 

버스에 올라 한참을 앉아있는데 기척이 없다. 멀리 온 것 같아 불안한 마음에 앞쪽을 살피니 그가 자고 있다.

깨워보니 그는 잠시 눈을 부비적거리다가 당황한다. 유적을 한참 지나쳤다며, 연신 미안하다는 시늉. 나는 이 곳 교통체계에 슬슬 화가나기 시작한다. 버스 기사와 말을 주고받더니, 반대 방향으로 순환하는 버스를 잡아준다. 그리고 그 사이에 나의 목적지가 제대로 전달이 되긴 한 건지, 환승한 버스는 다시 20분쯤 달려 유적은 커녕 돌맹이 하나 안 보이는 곳에서 나보고 내리란다.

 

 



언제나처럼 내가 내리는 곳에 택시 기사들이 모여든다. 그들 중 하나가 내게 "Do you speak English?"라며 앞장서서 말을 시킨다. 마음이 급해 잠깐이라도 유적을 구경할 수 있을까 싶어 그들에게 길을 묻는다.
 
 

목적지를 설명하기 시작하니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을 반쯤 벌린 상태로 서로 눈치를 본다.

 

그래, “archaeological site”라는 씨알도 안 먹히는 말을 내뱉은 건 내 잘못이다 치고,

“stone”도 못 알아들을 거면서 왜 영어는 할 줄 아냐고 물어 본거냐.

 

"Hotel? Go hotel?" 만을 반복하는 그들을 애써 따돌리고 걷다보니 하늘은 이미,

더 이상 유적을 찾는 게 무의미하다.

 

 

 
 

 

아, 참고있던 화가 치밀어오른다.
 

숙소에서 나오면서부터 버스 터미널로, 버스 터미널에서 도시간 이동, 그리고 버스 환승까지 어느 것 하나 나 등쳐먹으려는 놈 거치지 않고 편하게 이동 한 적이 없는데 여기 도착해서까지 원하는 것 하나 보지 못하고 시간만 낭비한 채 베이루트로 돌아가게 생긴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뭘 어쩌겠는가. 그렇게 다시 똑같은 루트를 거쳐 숙소로 돌아가며, 나는



‘이 빌어먹을 나라를 내일 당장 떠야겠다’고 결심한다.

 




 

 

2010년 12월 23일 여행기, 끝.





다음 글 - [trip to_ Middle East] - 레바논에서 시리아, 다시 요르단으로 국경 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