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bruary 26, 2011
베를린 여행, 둘째 날.
오늘은 독일 - 크게는 유럽 현대사의 어두운 단면을 엿보는 날로 계획했다.
우울한 하루가 될 예정이지만, 그래도 일정은 도시의 랜드마크를 찍으며 일정을 시작한다.
의회(Reichstag) 앞에서 출발,
브란덴부르크 문 (Brandenburger Tor: Brandenburg Gate)을 지나,
길을 건너면,
갑작스레 맞닥뜨리게 되는 콘크리트 조각들.
이 곳이 오늘의 첫번째 목적지이다.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석비들(Stelae)은 바로
유럽에서 학살당한 유대인을 위한 기념비(Memorial to the Murdered Jews of Europe)이다.
2003년에 시작되어 2005년 건축을 마친 2,711개의 석비는 베를린의 중심에 우뚝 서게 되었다.
부지의 남동쪽 끝에는 지하로 통하는 계단이 있어 information center로 이어진다.
입구에 쓰인 문구.
사실 이 거대한 기념비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논쟁적인데,
독일의 유대인 커뮤니티를 대표하는 Ignatz Bubis는 이러한 기념비의 존재 자체를 두고 "쓸데없다"고 표현하기도 했다고 한다.
Primo Levi의 인용은 마치 이러한 입장에 변명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Introduction.
1933년에서 45년까지, 결국에는 홀로코스트로 이어진 독일의 몰살 정책을 정리한다.
Room of Dimensions
인종적 박해가 이루어지는 동안 유대인에 의해 씌여진 묘사들
Room of Families
각기 다른 국적과 다른 사회적 배경을 가진 가족들의 역사를, 나치의 박해 이전과 이후를 중심으로 소개한다.
Room of Sites
유대인 학살이 유럽에서 지리적으로 어떻게 퍼져나갔는지를 보여준다.
Memorial에서 나와 다음 목적지로 향하는 길,
Alexanderplatz와 함께 베를린의 중심 중 한 곳인 Potsdamer Platz를 지나는데
웅성웅성, 어수선한 분위기.
조금 더 들어가보니 이 곳에는 시위가 한창,
독일어를 전혀 모르기 때문에 무슨 이유인지는 알 수 없다.
포츠담 광장 근처에는 Sony Center가 있다.
꼭 구경할 생각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지나가는 길이니 한 번 들어가본다.
이 화려한 컴플렉스는 각종 상점과 음식점, 컨퍼런스 센터로부터 호텔과 사무실, 영화관과 박물관까지 모여있는 그야말로 복합 건물이다.
이 건물은 베를린 장벽의 붕괴로 인해 생겨난 공간에 7억 5천 유로를 들여 지어졌는데, 이 비용을 스폰서 했던 소니는 2008년에 1억 5천 유로 이상 손해보며 건물을 매각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베를린에 살았다면 자주 오고 싶었을 것 같은 공간이지만,
간단히 끼니를 해결하고 다시 길을 나선다.
그리 멀지 않은 거리를 걸어 두 번째 목적지 도착 -
테러의 지형학 (Topographie des Terrors: Topography of Terror)
특이한 이름을 가진 박물관.
그 이름에서 대충이나마 짐작할 수 있듯,
이 곳 역시 나치 독일의 기록을 보관하는 곳이다.
게슈타포(Gestapo)와 SS(Schultzstaffel)의 본부가 위치해있던 부지에 지어졌다고 한다.
역시 1933년에서 1945년 사이 나치 독일- 제3제국-의 역사를 사진 전시와 그 묘사로 풀어나가는 곳이다.
그 내용은 제 3 제국의 게슈타포와 SS, 경찰과 같은 기관과 그들이 자행한 범죄, 베를린에서의 국가사회주의 - 프로파간다와 테러 사이- 등으로 이루어진다.
감상을 위한다기보다는 - 다분히 설명적인 곳이기 때문에, 그것을 다시 포스팅에서 늘어놓기는 어려울 것 같다.
(하지만 독일 현대사에 관심이 있다면 꼭 가봐야 할 곳임은 분명하다.)
이 곳 멀리까지 '관광'을 와서 '공부'를 하다 지쳤는지,
다음 사진은 바로 (맥락 없이) 다음 장소로 건너뛴다.
이 곳은 베를린 유대인 박물관(Jewish Museum Berlin: Jüdische Museum Berlin)의 입구이다.
2,000년에 이르는, 독일에 거주하는 유대인의 역사를 전시하는 곳이다.
독일에 유대인 커뮤니티가 발생한 시점, 도시와 시골에서 살아간 이들의 이야기로 전시는 시작된다.
이는 곧 종교와 가족, 독일인이자 유대인으로서 살아가는 이들의 정체성, 근현대에 들어와 상인/기업가/과학자/예술가로 부를 축적해나간 유대인들의 배경으로 이어지며,
다시 20세기의 어두운 역사 - 시오니즘, 그리고 히틀러의 국가사회주의와 그 이후에 대한 전시로 끝을 맺는다.
유럽의 유대인 이야기에서 피해갈 수 없는 주제 - 나치 독일
그 중 가장 유명한 전시는 'Memory Void' 섹션의 설치예술이다.
'낙엽 (Fallen Leaves: Shalekhet)'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작품은
이스라엘 예술가 Menashe Kadishman이라는 사람에 의해 구상 및 제작되었다.
건물의 빈 공간에 철로 찍어낸 10,000개의 얼굴이 깔려있고 박물관의 방문객들은 이를 밟고 지나가도록 되어있는데,
이 얼굴 조각들이 서로 다른 조각들과 맞부딪치면서 공간은 요란한 쇳소리로 울리게 된다.
Kadishman은 홀로코스트의 유대인 희생자 뿐 아니라 "전쟁과 폭력의 모든 희생자들에게 이 작품을 바친다"고 말했다.
올 때는 길 찾느라 헤매다 정신이 없어서 남겨두지 못했던 건물의 외부.
어느새 또 저물어버린 하루,
다시 숙소를 향해 지나가는 포츠담 광장.
베를린의 현대적 느낌을 가장 강렬하게 선사하는 곳이 아닌가 싶다.
브란덴부르크 문.
낮보다 밤에 조명과 함께하는 모습이 훨씬 운치있다.
포스팅을 시작하며 '우울한 하루가 될 예정'이라고 생각했고 정말로 오늘 관람한 것들은 '재미있게' 볼만한 성질의 것들은 아니었다.
하지만 "상징적 의미를 전혀 부여하지 않았다."고 하면서도 콘크리트 석비 사이에서 차분한 감상을 하게 만드는 추모공원과
예술적 발상을 통해 애잔한 마음을 만들어내는 유대인 박물관의 전시 형태는 정말 놀라울만큼 뛰어났다.
이제 겨우 이틀째지만
또 한 번 다른 유럽의 도시들에 그랬던 것처럼
베를린의 매력에 한없이 빠져들며,
2011년 2월 26일 여행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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