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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 Milano/to Berlin

베를린 (3) Bauhaus Archive, Reichstag, Humboldt University, Checkpoint Charl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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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ruary 28, 2011





베를린 여행 마지막 날,



 


Tiergarten 공원(Großer Tiergarten)을 가로지르며 하루를 시작.





 

공원 중앙에 위치한 승리 기념비 (Berlin Victory Column :Berliner Siegessäule)





    


소유욕을 불태우는 올드 비틀.






오늘 처음 발길이 닿은 곳은 Bauhaus Archive(Bauhaus-Archiv), 디자인 박물관이다.



 


Bauhaus는 1919년부터 1933년까지, 아주 짧은 기간동안 운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20세기 건축과 디자인 예술에 대단한 영향을 미친 학교라고 한다.


지금 내가 찾은 이 곳은 학교에서 출품된 여러가지 종류의 작품 뿐만 아니라 관련 문서들까지 보관하는, 말 그대로 어카이브와 같은 장소이다.




이번에도 역시 나는 건축/디자인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지만,


모더니즘을 반영하는 신기한 아이템들 구경하며 재미있게 놀다올 수 있는 곳.



- 사진 촬영은 불가하여 패스






 


나오는 길, 다시 Tiergarten- 얼어붙은 호수와 가지만 남은 나무가 쓸쓸한 느낌을 연출한다.



(계속 언급할 기회를 놓쳤는데, 2월의 베를린은 정말 춥다.)






오늘은 베를린 일정 중에서도 가장 기대에 찬 마음으로 기다리던,



Reichstag(의회)에 방문하는 날.



 



대부분의 관광 명소에서 내가 얻는 것은 건물, 또는 작품이 가진 미를 감상하거나 역사적/고고학적 생활과 문화를 간접 경험하고 또 상상해보는 것이지만

의회 방문은 이와는 달리 다소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독일이라는 강대국의 현대 의정이 이루어지는 공간,

이 곳에 방문하는 일은 나에게 (나름 정치학도라고) 가슴뛰는 일인 것이다.





가볍게 용어 정리.


Reichstag라는 용어는 독일 영토가 신성로마제국에 속하던 시기로부터 20세기 초반까지 독일 제국의 의회(Imperial Diet) 그 자체에 붙은 이름이었다.


현재 내가 서있는 이 건물은 나치 정권이 들어서면서 입법기관의 장으로써 그 기능을 잃게 되는데,

제 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독일이 동-서로 분단되면서 각각 동 베를린과 본(Bonn)에서 의회를 열고 활동했다. 


이 때 입법 [기관]에 해당하는 용어는 Busdestag라는 명칭으로 전환되었고,


통일 이후 1990년부터 약 10년에 걸쳐 재건된 이 건물은 다시 독일 입법부의 건물로 복귀하게 되었다.


이러한 사정에, 현재에 이르러서는 의회가 활동하는 [건물]을 지칭하는 이름으로 Reischtag라는 이름을 사용한다고 한다.





 


최근 의회 건물은 경계 강화 인해 일반인의 출입을 제한하고 있다.


미리 온라인상으로 신청한 사람에 한하여 입장할 수 있는데. 당연하지만 공항에서의 passport control보다도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렇게 미리 참가 인원의 인적 사항을 제출, 정해진 시간에 맞춰 가면 의회 직원의 안내를 받아 단체로 이동하며 내부를 관람한다.



 


무려 620명의 의원이 모여 국민들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국가의 현재와 미래를 논하는 곳.



 


의장석 위에는 독일 연방 정부의 상징인 독수리가 위용있게 붙어있다.


(그러나 독수리가 너무 살찐 나머지 닭이라 부른다고...)







회의실을 떠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로-



 


건물 옥상에는 멋진 돔이 얹어져있다.



 

 


돔의 내부.


자연광을 반사하여 아래(회의장)로 전달하도록 설계되어있다.

 



 

 




나선형으로 길게 이어지는 계단을 오르며 바깥으로는 360˚의 베를린 전경을, 밑으로는 본회의실을 구경할 수 있다.



 

 

 


마치 현장학습나온 학생처럼 들떠서 눈을 휘둥그레 뜨고 다닌 시간.





벌써 이른 저녁, 다시 장소를 옮긴다.



             


오늘도 여지없이 브란덴부르크 문을 지나,



 


훔볼트 대학(Humboldt University of Berlin: Humboldt-Universität zu Berlin)을 방문.

(레바논의 AUS를 방문하면서, 앞으로 여행을 할 때 그 나라의 최고 대학을 방문하겠다고 다짐했었다.)




과거에 베를린 대학으로 불렸던 이 학교는


헤겔부터 마르크스, 엥겔스까지 19세기 철학의 주인공들을 배출한 곳이며


졸업생들 중 노벨 상 수상자가 현재까지 무려 40명에 달한다고 한다.






그러나 대학에 딱히 캠퍼스라 할만한 공간은 거의 없고, 방중 늦은 시간이라 마음대로 출입할 상황도 아니다.




이 곳의 명소는 바로 광장 한 가운데 바닥에 보이는 구조물에 있다.





1933년 5월 10일, 대학 도서관에서 나치 정권에 반하는 금서 20,000여권이 불태워졌는데,


이 공간은 같은 권수의 책을 진열할 수 있는 빈 책장으로 남겨졌다.



 


정치 권력에 의해 교육과 지식, 학문이 통제당했던 비극을 기억하며, 다음과 같은 Heirnrich Heine의 명언을 비문으로 새겼다고 한다.


"Das war ein Vorspiel nur, dort wo man Bücher verbrennt, verbrennt man am Ende auch Menschen"

("That was only a prelude; where they burn books, they ultimately burn people").



 


 


다시 베를린 여행의 마지막 방문지,


East Side Gallery로 이동,



 


East Side Gallery는 베를린 장벽의 동쪽 끝에 위치한, 1.3km에 달하는 갤러리이다.


1990년 독일 통일 이후 전 세계의 예술가가 모여 베를린 장벽의 끝에 105개의 그림을 그렸고,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크고 가장 오래 보존되는 야외 갤러리로 남아 있다.



시대적 배경에 맞게 'freedom'을 키워드로, 더욱 자유로운 전 세계의 사람들을 위한 희망과 희열을 표현했다고 한다.





무료로 길에서 관람하는, 참 재미있으면서 의미심장한 작품들.



 

 

 

 

 

 

 

 

 

 

 

 

 

 

 

 

 

 

 


트인 공간에서 산보하듯 걸으며 감상할 수 있어 좋다.



 

 

 

 

 

 

 





 

이 곳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은


1979년 당시 각각 소련과 동독 공산당의 서기장이었던 레오니트 브레즈네프(Leonid Brezhnev)와 에리히 호네커(Erich Honecker)의 키스 장면이다.



 


나중에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기 전까지는 이 작품이 아티스트의 발칙한 상상력이라고 생각했으나,


이 그림은 1979년에 있었던 동독 건국 30주년 기념 행사에서 찍힌 실제 사진을 그림으로 옮겨놓은 것에 불과하다고 한다.



http://www.corbisimages.com/stock-photo/rights-managed/42-21927891/kiss-of-soviet-leader-brezhnev-and-east


당시 사회주의 국가의 지도자들 사이에서의 키스는 그리 특이한 일이 아니었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사람이 특별히 열정적으로 키스한 건 사실이라는 부연설명까지...)



 

 



다시 장소를 옮겨, Checkpoint Charlie.



 


베를린 장벽이 존재하던 당시 외국인과 연합군이 동독과 서독을 건널 수 있도록 만든 지점이었다고 한다.


지금 베를린 장벽은 무너졌지만, 그 분단의 상징으로 checkpoint 한 곳을 남겨둔 것이다.


여기서 charlie는 군복무를 마친 사람이라면 익숙할 Alpha, Bravo, Charlie - 무전 용어의 C이다.



 

 








이렇게, 짧았던 베를린 여행을 마치고 다시 밀라노로 돌아갈 일만 남은 나와 두 명의 Salvatore.




이제는 여행기에서 사진과 설명, 느낌에 집중하다보니


시칠리아가 고향인 이 순박한(?) 청년들과의 에피소드는 자연스레 없어져 버렸지만


여정을 시작할 때 느꼈던 서먹함을 꽤나 많이 줄일 수 있었던 3일.





그나저나 이들은 왜 베를린에서의 마지막 식사로 케밥을 먹자고 주장하며 나르길레를 태웠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게다가 저걸 기념품이라고...











2011년 2월 28일 여행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