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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ruary 25, 2011
중동 여행이 시작되기 전, 그러니까 작년 12월 중순 경 - 기말고사와 term paper로 한창 정신이 없을 때였다.
에리온이라는 이름의 친구가 여행을 제안했다.
에리온은 기숙사에 사는 두 명의 친구와 매년 한 번씩 여행을 다녀왔는데, 이번 해에는 나도 함께 가지 않겠냐는 거였다.
사실 다른 두 친구와는 인사만 하는 그런 사이였지만- '여행 가서 친해지면 되니까'라고 생각하며, 흔쾌히 이들과 함께하기로 했다.
항공권과 호스텔을 예약해 놓은 상태로 나는 한 달동안 중동 여행을 다녀왔고, 2월이 되어 학기도 시작되었다.
주말을 이용하여 2박 3일동안 계획된 베를린 여행, 그 당일 아침 - 방에는 에리온의 쪽지가 와 있었다.
갑자기 집에 일이 생겨 급히 좀 다녀와야겠다는 거였다.
그래서 나는 아주 어색한 사이의 친구 둘과 베를린 여행을 시작하게 되었다.
두 명 모두 Salvatore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한 명은 Salvo, 한 명은 Sasa'라는 별명으로 구분하여 부른다.
어쨌든, 지난 번과 마찬가지로 불안한 출발-
일정은 알렉산더 광장(Alexanderplatz)에서 TV tower(Fernsehturm)와 베를린 시청(Red City Hall: Rotes Rathaus)을 보며 시작.
베를린의 상징을 의도하여 지어진 이 TV 타워는 남산의 N서울타워를 연상시킨다.
시청 맞은 편의 St. Mary's Church(Marienkirche)
지금까지 본 것들은 관광 명소라기보다는, 도시 중심의 랜드마크와 같은 곳들이다.
본격적인 첫 행선지는 바로, 베를린 돔(Berlin Cathedral: Berliner Dom).
동행하는 친구들이 독일어 'Dom'은 이탈리아어의 'Duomo'와 같은 뜻이라고 이야기해준다. (그 전까지 나는 영어의 dome과 같은 단어일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탈리아에서 온 여행자 답게 베를린 방문의 시작은 두오모부터.
로마 카톨릭의 교회로 지어졌으나 이후 루터교, 칼뱅파를 거쳐 개신교회의 교당으로 사용되어왔다.
크레인까지 이용하며 대대적으로 수리중인 내부.
한 도시를 대표하는 대성당이라고 하기에는 규모가 작다. (이탈리아의 두오모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
계단을 통해 3층으로 올라가면 돔(Dom)의 역사와 유물을 전시하는 작은 박물관이 있다.
이 곳에서 감상 포인트는 건물 그 자체보다도- Cupola에 있다.
박물관에서 한 층 더 올라가면, 이렇게 도시의 중심에서 베를린을 둘러볼 수 있는 공간이 펼쳐진다.
큐폴라를 한 바퀴 돌며 Spree 강부터 시작해 TV tower, 제국의회(Reichstag), 박물관 섬(Museum Isaland: Museumsinsel)등의 명소를 내려다본다.
내려오는 길, 절묘하게 하이파이브 중인 Salvo.
위에서 박물관 섬(Museum Island)이 보인다고 적었지만, 사실 베를린 돔은 이미 그 섬 위에 위치해 있다.
베를린의 중심을 흐르는 Spree강은 마치 한강의 여의도와 같이 그 중간에 섬을 하나 가지고 있다.
Source: Wikipedia
그리고 그 섬의 위쪽에는 베를린 돔과 함께 다섯 개의 박물관이 모여있는데, 하나하나가 엄청난 가치를 가지는 것들이라고.
지금 보이는 것은 Alte Nationalgalerie (Old National Gallery).
우리의 목적지는 아니다.
박물관 다섯 곳을 전부 구경하려면 그 시간만 며칠을 잡아야 하기 때문에, 우리는 의견을 모아 한 곳만 둘러보기로.
결정된 곳은-
페라가몬 박물관(Peragamon Museum)
페라가몬이라는 이름은 지금의 터키에 위치하는 고대 그리스의 도시 이름이다.
이 박물관의 주요 전시품은 크게 네 가지가 있는데,
(- Peragamon Altar - Market Gate of Miletus - The Ishtar Gate - The Mshatta Facade)
처음 둘은 지금의 터키 지역에, 뒤의 둘은 이라크와 요르단 지역에서 발굴된 유적을 독일로 가져와 진열한 것이다.
이러한 수송에는 터키 정부의 승인, 혹은 구 오토만 제국 술탄의 호의가 있었다고는 하나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제국주의적 유럽의 행태를 고려하면 그것은 강도짓에 가까운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래서 오늘날에 이르러, 이러한 독일의 소장은 그 정당성에 논란이 불거지고 있으며, 유물을 해당 지역에 반환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한다고.
그러나 과연.
페라가몬 박물관의 입구는 Peragamon Altar로부터 시작된다.
계단을 오르며 박물관의 동선이 시작되도록 설계되어, 이 모든 것이 박물관에서 제작한 입구가 아닌가 착각할 뻔했다.
그러나 이 거대한 제단을 정말 페라가몬으로부터 가져온 것이라고 한다.
내부에는 소아시아 지역을 벗어나 현재 중동지역에 이르는 광범위한 곳에서 발굴된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막 중동지역에서 유럽으로 돌아온 나는
이 유물들이 원래 위치했을 어떤 곳에서보다도 그 전시형태가 훌륭하다는 사실이 조금 슬프게 느껴진다.
발벡의 쥬피터 신전에서 가져온 유물도 발견.
다음은 Market Gate of Miletus.
2세기경 지어진 로마의 건축은 10세기와 11세기에 발생한 지진으로 대부분 유실되었고,
20세기 들어와 그 파편을 이용하여 대부분 새로 만들은 것이라고 한다.
나는 사실 20여 세기 전의 건축과 현 세기의 복원을 구분할 줄도 모르지만,
이러한 설명을 듣고 나면 괜히 원작이 가지는 아우라(Aura)를 잃었다는 느낌에 자극이 줄어드는 것만 같다.
이어서, 박물관의 주인공 Peragamon Altar만큼이나 각광을 받는
Ishtar Gate
기원전 5세기 이슈타르 여신에게 봉헌된,
그리고 바빌론이라는 도시의 입구로 사용된 대문이다.
원래는 대문 두 개가 겹쳐서 건축된 형태였는데
현재 전시된 것은 앞 쪽의 작은 것이고
뒤 쪽에 서있떤 큰 게이트는 박물관에 설치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나머지 일반에 공개되지 않는 곳에 보관되고 있다고 한다.
광택이 나는 벽돌을 사용했으며 용과 사자, 들소와 같은 동물들이 양각되어 있다.
벽돌이 내는 푸른 색감과 동물 조각이 주는 입체감이 신비하게 느껴진다.
별로 놀라울 것도 없지만, 이 대문으로부터 이어지는 도로의 조각들은 전 세계(터키, 미국, 스웨덴, 독일)의 박물관이 나누어 소장하고 있다고.
박물관 내부는 계속해서 이슬람 예술과 중동 지역에서 발굴된 유물들의 전시로 이어진다.
2층 통로에서 내려다보는 Processional Way. (Ishtar Gate에서 이어진다.)
그리고 박물관의 마지막 주요 전시물 Mshatta Facade.
현재의 요르단 지역 - 중동 포스팅에서 자주 언급한 우마야드 왕조의 거주지였던 성의 일부이다.
19세기 중반 오토만 제국의 술탄이 독일의 빌헬름 2세에게 주는 선물이었다고 한다.
다마스커스 포스팅에서 빌헬름 2세가 살라딘의 묘를 선물했다고 했는데,
당시 오토만의 술탄과 독일의 황제는 이렇게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밑으로는, 위에서 본 <건축물>들 보다는 스케일이 작지만
볼만한 전시품들.
박물관을 돌고 나오니 이미 어둑해진 저녁,
미리 계획해둔 장소가 있어 서둘러 버스를 타고 장소를 옮긴다.
베를린의 첫 날 밤, 내가 기대를 안고 향한 곳은
베를린 필하모니 (Berliner Philharmonie)
공연 시작에 가까워지면 예약되지 않은 좌석을 싸게 판매하단다는 정보를 접하고 용감하게 오게 되었다.
오늘의 필하모니는 Rundfunk-Sinfonieorchester Berlin의 연주.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Sergej Prokofjew)의 Symphony No. 1 in D Classcial Op. 25,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의 Piano Concert No. 2 in B-flat major, Op. 19,
다시 프로코피예프의 Symphony No. 6 in E-flat minor, Op. 111 의 순서로 이어지는 공연이다.
클래식 음악에 관해서는 정말 쥐뿔도 모르는 나지만, 그래도 한 발짝 다가갔다고 느끼게 해준 경험.
이 곳에서 느낀 감동을 포스팅에 올리는 사진들처럼 간접적으로나마 전달할 수 없는게 아쉬울 만큼 가슴벅찬 순간이었다.
회화의 매체로는 거의 감명을 받지 못하는 내가, 고전 예술에 조금이나마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길은 오케스트라가 아닐까 생각해보지만-
서울에는 비싼 표밖에 없잖아...
2011년 2월 25일 여행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