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직의 변' 같은 건 없었다.
업계 안에서 이직할 생각이 없었던 나는, 나중의 계획을 묻는 수십 명의 사람들에게 대충 얼버무린 대답을 하고 다녔다.
"모르겠어요, 나가서 천천히 생각해 보려고요."
이렇게 실없는 말에 따라오는 나름의 충고는 대개 정해져 있었다.
"어차피 나가서 할 일 없으면, 확실히 무언가 정할 때까지라도 붙어있지그래?"
나는 듣기 싫었던 그 잔소리에 대항하여 구구절절 이야기를 늘어놓지 않았다. 사실 퇴사의 시점과 관련하여, 나 자신을 설득할 만한 강력한 이유를 가지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얼마 채우지도 못했던 통장 잔액이 어찌나 빨리 빠지는지 확인할 때면, '그럴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후 별생각 없이 백수 생활을 해왔고, 오늘은 우연히 주로 가는 영화관의 지난 예매 내역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리고 너무나도 진지하게, 바로 그때가 적기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 앞으로도 칸 수상작들이 오스카 시즌에 함께 개봉한다면, 무슨 직업을 갖게 되든 연초는 정신없이 보내게 되겠지,
2017년 3월 21일, 사후 결과론적으로 쓴 사직의 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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