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cember 26, 2010
본격적으로 탑덱(Topdeck) 일정이 시작되는 날.
호텔 조식을 먹고, 일정 시간에서 여유롭게 5분 정도 늦게 나간다. 20명쯤 되는 팀원이 모두 모이는 데에는 적어도 30분은 걸릴 거라 예상하며, 하는 일 없이 로비에서 죽치고 있기는 싫으니까,
그리고 예상은 정확히 빗나갔다. 그들은 이미 버스에 탑승해있었고, 내 뒤엔 겨우 두 명 쯤.
아. 밀라노에서 사귄 몇 안 되는 이탈리아 친구들을 '서양인'으로 일반화 해버렸다. 매일 같은 시간에 모여도 10분은 지각은 기본이고, 사과 따위는 모르는 그들을.
버스에 탑승하니 현지 가이드의 인사와 일정소개가 시작된다. 알아듣기 쉽지 않은 현지인의 영어 발음. 그리고 차차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나와 멕시칸 한 명을 제외한 다른 모든 일행은 영국, 호주, 미국에서 왔다고 한다. 전부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그들. 썩 유쾌하지 않은 이 상황이 어쩐지 익숙하다 싶었더니, 지난 한 학기 대학 강의실에서의 상황과 정확히 들어맞는다. 이탈리아 현지 교수의 영어 발음과, 교실을 점령한 미국 친구들의 속사포같은 대화 사이에서 고생했던 그 한 학기의 상황과. 그래도 어색한 티를 내고 있으니 네댓 명쯤 말을 걸어준다. 그들이 영어권 국가에서 왔기 때문에 영어로 대화하기 힘들다는 아이러니한 변명은 차치하더라도, 지금까지 도미토리 룸에서 만난 다른 여행자들보다 대하는 게 편치 않다. 왜인지 조금은 격식을 차려야 할 것 같은 느낌도 들고.
오늘 일정은 암만(Amman) 시내의 시타델(Citadel)과 북쪽의 아즐룬 성(Ajloun Castle), 그리고 고대 도시 제라슈(Jerash).
앞으로 이어질 요르단 포스팅에 대해 미리 변명 하자면, 사진은 대중없고 글에도 스토리가 부족할 듯 싶다. 아무래도 가이드 졸졸 쫓아다니며 영어 한 마디라도 더 알아들으려 애쓰고, 동시에 감상하며 사진도 찍으려다 보니, 나부터가 경황이 없었다.
그래서 암만의 시타델(Jebel al-Qala’a) 사진은, 뜬금없이 헤라클레스 신전(Temple of Hercules)부터 시작한다.
(기억을 더듬어보자면, 옴미아드 궁전을 포함해 많은 것들을 본 것 같지만 사진은 없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 통치 기간(161-180)에 세워진 헤라클레스 신전.
현재 단(壇, podium)과 기둥이 남아 있다.
신전 주위에서 발견된 조각상의 일부.
손가락과 팔꿈치밖에 발굴되지 않았지만, 그 거대함이 이 신전을 헤라클레스에게 봉헌된 것으로 추측하게 만든다.
시타델은 그 본연의 목적에 맞게 암만 시내에서 가장 높은 언덕에 지어졌다.
그 덕에 지금에 와서는, 유적의 건축물 뿐만 아니라 암만 시내를 내려다볼 수 있는 경관을 제공하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사진에는 자세히 표현되지 않았지만, 암만은 내가 방문한 중동 3개국에서 가장 현대적인 도시 중 하나다. 어떤 면에서는 레바논의 베이루트보다 더. 베이루트가 유럽의 분위기를 재현하며 재건 중에 있다면, 이 곳은 아시아에 더 가까운 느낌으로 개발된 신도시다.
전망을 마치고 성채 내에 위치한 국립고고학박물관(National Archaeological Museum)에 입장한다.
요르단 전역, 시대를 망라하는 발견물들을 전시하고 있으며
사해 문서(Dead Sea Scrolls) 일부를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관람은 해골로 시작
석기 시대에서 청동기 시대로의 과도기,
유아의 경우 흔히 시체를 항아리에 담아서 거실 밑에 매장했다고 한다.
누가 그들의 코를 검게 만들었는가…
이 나라에도 조각상의 특정 부위를 만지면 행운을 가져온다거나 하는 미신이 있는 게 아닐까 상상해본다.
그리고, 그 유명한 사해 문서(Dead Sea Scrolls).
기원전 150 – 후 70년 정도에 작성되었다는 이 문서의 역사적, 종교적 가치에 대해서 가이드 아저씨는 열정적으로 설명하지만, 종이 쪼가리에는 별 관심이 가지 않는다.
시체를 보관하는 데 사용되었던 항아리들(이었던 듯?)
그리고, 이번에도 역시 사진의 연속성은 떨어지지만
우리는 Ajloun(아즐룬)으로 향한다.
성(城) 입구에서 볼 수 있는 전망, 그리고 Ajloun Castle(Qala’at ar-Rabad)
살라딘 휘하 ‘Izz ad-Din Usama bin Munqidh 이라는 무시무시한 이름을 가진 장군에 의해 건설되었다고 한다.
(앞으로 보게 될 대부분의 성들에 대한 소개 또한 이와 대동소이할 것이다.)
마치 동화 속에 나올 것 같은 분위기.
아즐룬의 완만한 구릉지대가, 암만과는 또 다른 경치를 보여준다.
경치를 온전히 감상하는 데 있어 방해가 되는 대한민국 육군 예비역으로서의 경험이랄까,
이런 곳에 올라오게 되면 다른 것보다도, 1000년 전 쯤 이 곳을 지켰을 초병의 입장을 상상하게 된다.
끔찍했겠지…
일행 중 나만이 할 수 있는 상상이 아니었을까 싶다.
다시 한 번 장소를 옮겨, (그러고 보니 하루에 도시 세 곳을 옮겨가며 유적을 감상하고 있지만, 여타 포스팅과는 다르게 택시기사와 다투는 이야기를 쓰지 않고 있다. 물론 나는 여행사의 대형버스에서 맘 놓고 몸을 뉘여 눈을 붙이다가, 일어나서 가이드 북을 펼치고 유적지 설명을 예습하며, 그렇게 편히 가고 있었으니까.)
오늘 일정의 마지막 목적지이자, 가장 거대하고 인상적인 고대 유적을 자랑하는 제라슈(Jerash).
고대 도시의 대문과도 같은 Hadrian’s Arch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Hadrianus)의 방문을 예우하기 위해 지어졌다. 같은 이름을 가진 아테네의 건축물 보다는 조금 덜 유명하다.
아치와 고대 도시 벽면 뒤에는 경마장(hippodrome)이 있다.
15,000여명의 관객을 수용하고, 전차 경기 뿐 아니라 각종 운동 경기들을 진행한 곳이다.
이번 여행에서 많은 hippodrome을 방문 했지만, 이 곳의 보존상태가 가장 좋았고(라기 보다 재건이 잘 된 것이지만) 인상적이었다.
이어서, 고대 도시를 출입할 수 있는 네 개의 대문 중 하나인 남문(South Gate)
남문을 지나면 제라슈의 아이콘, 포럼(Forum, or Oval Plaza)이 나온다.
80m×90m 타원형의 거대한 포럼.
다른 로마제국의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도시의 사회·정치적 심장의 역할을 하는 시장이 들어섰다.
포럼 한 가운데서 설명을 듣고 있는 우리 Team Topdeck.
드디어 사진으로 소개하게 된 우리의 현지 가이드, 무함마드 아저씨.
유적에 쓰인 석회석이 얼마나 고품질인지 설명하면서, 부딪힐 때 내는 소리에 따라 돌을 구별하는 법을 가르쳐주고 있다.
Forum 앞에 펼쳐진, 도시의 북쪽과 남쪽을 잇는 중심 축
Cardo Maximus.
막힘 없이 펼쳐진 모습.
그리고 이 길이 도시의 동쪽과 서쪽을 잇는 decumanus와 만나는 지점에 아고라(Agora, Macellum)가 있다.
가운데 보이는 것이 우물, 이 주변에서 공적인 모임이 이루어졌다.
계속 제라슈의 main road를 따라 걷다 보면 Nymphaeum(장식용 분수, 물의 정령 Nymph에게 바쳐진다)도 나오고,
그 옆에는 Propylaeum이 아르테미스 신전(Temple of Artemis)로 들어가는 입구 역할을 하고 있다.
신전으로 향하는 계단을 올랐을 때 보이는 전경.
물론 반대 편을 돌아보면 아르테미스 신전과 미남도 있다.
말 없이 혼자 사진을 찍고 있으니, 일행에 속한 한 누님이 (신상정보를 기억하기엔 벌써 반년이 지났다.)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한다. 나는 그렇게 활짝 웃어버렸나보다. 이 때의 인연으로, 요르단 일정이 끝나는 날까지 내 모습이 담긴 사진의 상당 수는 그 여인네가 찍어준 걸로 기억한다.
다시 입구로 돌아가는 길,
Cardo Maximus와 Forum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언덕길로 안내 받는다.
유적을 나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South Theatre. (Jerash에는 원형극장이 두 개 있다.)
이 쪽이 5,000명을 동시에 수용하던 거대한 원형극장.
음향을 청중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구조를 가졌다고 한다.
현지 가이드가 시키는 대로 극장 음향시설의 비밀을 체험해보는 청년.
이렇게 객석 아래 위치한 구멍에 대고 작게 속삭이면, 다른 구멍에 귀를 댄 사람은 마치 바로 옆에서 말을 하는 것처럼 들을 수 있다.
론플에는, 운이 좋다면 볼 수 있을 거라고 적혀 있는 요르단 파이프 밴드.
백파이프 등을 이용해 군가를 연주한다.
객석 상단에서,
역시 론플에서 추천하는 석양이 지는 시간.
이 곳에서 Jerash의 고대, 그리고 현대를 동시에 볼 수 있다.
이렇게 오늘의 일정은 끝나고, 숙소로 돌아갈 시간.
버스에 편히 앉아 호텔 정문까지 도착하니, 여행사가 이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잠깐 휴식을 취하고, 저녁을 해결하기 위해 암만 시내로 나간다.
이번 목적지는 Reem Cafeteria.
이 곳의 맛있는 Shwarma를 먹기 위해 사람들은 새벽 3시까지도 줄을 서고, 때로는 요르단의 왕실에서도 야식을 찾아 들른다는 론플의 허풍같은 소개. 바로 택시를 잡아 행선지를 말한다.
Cafeteria 혹은 Dive라는 단어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달렸지만,
이런 노점상에 가까운 모습은 예상치 못했다.
그럼에도 역시, 늦은 시간 많은 이들이 모여든다.
하지만 실망스럽게도, 내가 베어먹은 Shwarma는 언제 만들었는지 다 식은 걸 주었다.
어쩐지 말하기 무섭게 건네더라니. 차별 당한 건가 싶은 기분.
어쨌든 내일은 이 곳 암만을 떠난다.
요르단을 한 바퀴 돌아보고 다시 올 때는 이번 해의 마지막 날이 될 예정이다.
그 때까지 안녕,
2010년 12월 26일 여행기, 끝.
다음 글 - [trip to_ Middle East/Jordan] - 요르단 (2) Madaba, Mt Nebo, Wadi Mujib, Kar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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