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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 Milano

Giugno 8, 2011

 

 

 


 

어슴푸레 겨울의 여운이 남아있다며 미니홈피에 일기를 끼적인 지 한 달쯤 지났을 때였다.
 

‘완연한 봄’이 있어야 할 4월 초순의 자리에는 느닷없이 무더위가 들어와 앉아있었다.
 

밀라노의 기온은 갑작스레 32도를 넘겼고, 그럼으로써 이 도시는 그 여름의 맛을 미리 보여준 셈이다.

 
 

 

그리고 또 두 달이 지난 6월, 지금은 열흘이 넘도록 비가 내리고 있다.
 

하루 중에도 맑고 흐린 날씨를 되풀이하지만, 덕분에 더위는 저만치 물러갔다.

 

 

 


 

나는 이미 한 달 전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모두 끝마쳤고, 친구의 이야기를 빌리자면, 이후 나는 은퇴한 갑부나 할 만한 생활을 하고 있다. 학기 중에 바빴다거나, 혹은 게을렀다거나 하는 이유로 방문하지 못 한 도시의 이 곳 저 곳을 구경하고, 남는 시간에는 밀린 여행기를 쓰고, 그리고 또 다른 여행을 계획하며.

 

 

학기를 마무리하며 9개월 동안 이탈리아에서 무엇을 배웠느냐는 친구들의 질문에, 영화 <Eat, Pray, Love>의 대사를 따라하며 "dolce far niente(아무 것도 하지 않는 달콤함)" 라고 농담처럼 답 했지만, 실제로 내가 느낀 것들은 그 연장선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나는 이 곳 이탈리아에서 체류허가가 만료되는 1년을 꽉 채워 남기로 했다. 무슨 일을 할 지조차 분명히 하지 않은 채.

남들 러닝머신에서 땀나게 뛰는 동안 나는, 넘어질지라도 가만히 서있고 싶다는 바보 같은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이에, 또한 여행 중이라 메일을 한글로 입력할 수 없었던 나의 아버지는 "Your time is yours"라는 코멘트를 남겨주셨다. 언제부턴가 내가 하는 결정에 조언과 지원 이상의 간섭을 하지 않는 아버지였고, 이 번에도 더 이상 부연설명이 필요치 않은 진심 어린 충고만을 가슴에 남겨 주셨다.

 

 

 

물론 항상 기억하고 있었다. 한국에 돌아가면 ‘ 4학년’, 또는 더욱 적나라하게 ‘취준생’이라 불리는 사회 생활의 문턱에 직면하게 된다고. 분명 얼마 전 책에서 읽었던 것처럼, 나에게 주어졌던 무한에 가까운 선택지의 수는 급격히 줄어들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지금의 나에게 가장 와 닿는 금언은, 서울대학 교수가 아닌 니체의 관점에서 찾을 수 있었다.

 

 

“일체의 과거를 망각하고 현재의 순간에 머물러 설 수 없는 사람,
승리의 여신처럼 어지러움도 두려움도 없이 현재의 삶의 지평 위에 설 능력이 없는 사람은
행복이 무엇인지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그다지 모범적이지 않은 선택지의 답안이 또 다른 선택지를 낳고,
 

언젠가 후회할 일을 한 번 쯤 해야 한다면 그 때가 지금이라는 생각으로,
 

그리고 그 책임은 니체가 말한 것과 같은 ‘망각의 능력’에게 떠맡기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나의 고질적 '피터팬 신드롬'은 아직 극복이 멀어 보이지만,  
 
앞으로 삶을 살아낼 자신감 같은 게 생긴 것이다.

 

 

 

 

 


 

계절의 여왕이 일깨워줄 것으로 기대했던 감수성은 지금으로서는 느끼지 못 해도 아쉬울 게 없다.

 


 

 

 

장마 한 번이 여운을 남기며
 

그렇게도 지겨운 여름을
 

사랑하도록 만들듯,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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