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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 Milano

꼬모 호수 (Lago di Co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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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어느 날인가, 교실에 앉아 교수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옆자리의 Sophia가 부탁이 있다며 말을 걸어온다.

 

들어보니, 일본의 대학 친구들이 중간고사가 끝나는 주말에 밀라노로 놀러 온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그 때 그리스 여행을 떠난다고. 그래서 그 친구들이 밀라노에 머무르는 동안, 내가 그들을 가이드 해줄 수 없겠냐는 거였다.

 


확실히 이상한 부탁이었다. 나는 대답을 대충 얼머부리고 고민했다. 


‘솔직히 귀찮은데, 둘러대고 거절할까…’

 

 

 

그리고 다음 주, 같은 시간 같은 자리. Sophia는 벨기에에 위치한 국제기구에서 방중 인턴으로 일하기 위해 면접을 보고 왔다고 한다. (그녀는 능력자다) 그리고 나에게 줄 게 있다며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냈다.

 




벨기에 초컬릿.

 

 


그래서(?!) 나는 Sophia의 대학 친구들 쇼코유마를 가이드해주게 되었다.

 

 

(‘사진 찍어서 자랑해야지!!!’ 라고 생각하며 입은 이미 먹고 있었다.)

 

 

 

 

 

쇼코와 유마의 일정은 11월 첫째 주 목요일과 금요일에 밀라노를 둘러 보는 것이었다. 이틀 중 첫째 날에는 내가 수업 때문에 함께하지 못 하고, 둘째 날인 금요일에 그들을 가이드 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밀라노라는 도시에 대해 가볍게 언급할 필요가 있다.

 

밀라노는 관광하기 좋은 도시가 아니다. 분명 이탈리아에서 로마를 제외하면 가장 크고 부유한 경제 중심지일 뿐 아니라 세계 패션과 문화의 수도라 불리기도 한다지만, 내가 볼 땐 화려한 메트로폴리탄의 이미지 조차도 크게 두드러지지는 않는다. 특히 여행의 초점이 유적과 자연환경에 맞추어져 있다면, 일정에서 빼거나 하루 정도 잡는 것이 보통이다.

 

이런 밀라노를, 그들의 둘째 날에 함께하게 된 것이다.

 

쇼코와 유마는 예상한대로 첫째 날 두오모 대성당과 스포르체스코 성을 포함해 시내를 둘러보았다고 했고, 이 정도면 밀라노의 볼거리는 거의 끝났다고 할 수 있었다.

 

 

나는 시험이 끝났다는 기쁨도 잊은 채 또 하루 밤을 새서 다음 날을 고민해야 했다.

 

 

 

 


당일, 두 시간을 채 못 자고 만난 쇼코와 유마.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일정을 논의한다.

사실 논의라기보다 내 오랜 고민의 결과인 꼬모(Como)로의 당일치기 여행을 강요(?)한다.

 



꼬모 호수(Lago di Como)는 밀라노에서 기차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휴양지로, (결국 엄밀한 의미에서 밀라노 여행이 아닌 게 되었다.) 넓이가 145㎢에 달하는(밀라노 면적과 맞먹는다) 엄청난 크기의 호수다.

 

 




Cadorna 역에서 Como행 열차표를 사고 보니 한 시간이나 남는다. 주변에 마땅히 볼거리가 없어, 역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인 Universita Cattolica로 향한다.


“내가 공부하는 곳이야” 


시간 때우는 장소로 선택하긴 했지만, 두 달 전 나에게는 깊은 인상을 준 곳이다. 뿐만 아니라 밀라노 수호성인이 묻힌 Basilica (론리플래닛에도 소개가 되어있다)를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속보로 캠퍼스 투어를 마치고, 역으로 돌아가 Como행 열차에 올랐다.

 

 

 


쇼코는 프랑스에서, 유마는 독일에서 교환학생 생활 중이다.

셋이 마주앉아 이탈리아가 어떻고, 프랑스와 독일은 어떻고, 조잘조잘 떠들다 보니 꼬모에 금방 도착했다.

 

 

 

 

 

 

 

 

꼬모에서 유람선을 타면, 호수의 기슭을 따라 흩어져 있는 열댓 개의 마을을 둘러볼 수 있다.

뒤집어진 Y자 모양을 하고 있는 호수에서, 두 개의 물줄기가 만나는 곳에 위치한 마을 벨라지오(Bellagio)까지 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선착장에 도착한 우리도 벨라지오까지 가는 티켓을 산다.

 

벨라지오는 호수 근처 위치한 마을 중 가장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으로, 조지 클루니 등 유명인사들이 별장을 소유하고 있다고 한다.

 

한 가지 더, 벨라지오라는 이름에 조지 클루니가 출연한 영화 Ocean’s Eleven이 떠올랐다고 해도, 아주 무의미한 연관을 시킨 건 아니다.

라스베가스의 호텔 이름이 이 마을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고, 그 호텔 Bellagio의 카지노가 출연한(?) 영화라고 하니.

 

 

 

 




밀라노가 흐리고 안개까지 두터워 걱정을 많이 했는데, 신기하게도 배가 출발하는 순간 햇살이 내리쬔다.

운이 좋다.

 

 

 

 

 

호수를 가로지르며, 호반 곳곳에 자리잡은 여러 마을들을 구경할 수 있다.


Como와 Bellagio 중간에 위치하는 모든 마을의 나루에 배를 대기 때문에, 마음에 드는 곳이 있다면 어디든 내렸다가 다음에 오는 배를 타면 된다.

 

 

 

 

우리가 탄 배는 쾌속선이다. 호수를 떠다니는 유람선이 빨라 봤자라고 생각했지만, 정말 바다 위의 어선처럼 물살을 가르며 질주한다.

호수도 너무 큰 나머지 호수로 보이지 않고, 오히려 그 호반에 위치한 마을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아기자기한 여성취향의 마을들. 쇼코가 이 곳에 살고 싶다며 하염없이 바라본다.

 

 

긴 설명이 필요치 않은 마을 풍경.

 

 

 

 

 

 

 

 

꼬모 호수는 밀라노보다 스위스 국경과 더 가깝다.

 

멀리 알프스의 만년설까지 보인다.

 

 

 

 

 

 

 

 



쇼코와 유마, 그리고 내가 배의 갑판에 나와 정신 잃고 감탄하며 연신 셔터를 눌러대고 있을 때, 자연스럽게 영어를 사용하는 외국인들(물론, 이탈리아 입장에서의 외국인들)이 모여든다.

 

영국에서 여행 온 모자, 미국에서 출장 온 회사원 3명, 그리고 유럽에서 공부 중인 일본과 한국 학생 3명.

 

사진에 나오지 않은 두 명을 포함해서 여덟 명은, 이 자리에서 밀라노로 돌아가는 그 순간까지 함께하게 되었다.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친해지려 할 때 즈음 배는 벨라지오에 도착했다.




 

 

 





그런데 내리자마자 문제가 생겼다. 마을을 둘러보기 전에 밀라노로 돌아가는 티켓을 예매하려 하는데, 인포메이션 센터는 문을 닫았고 매표소 직원은 영어를 못 한다. 각자 알아온 정보에 의하면 이 곳에서 밀라노로 직행하는 기차가 있다고도 하고, 건너편 작은 마을까지 건너가야 기차를 탈 수 있다고도 하고, 그 곳에 가려면 다시 유람선을 타야 한다고도 하고, 작은 보트를 이용한 수상택시를 이용하는 편이 낫다고도 하고. 심지어 영국에서 오신 아주머니는 우리가 내린 호반이 섬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여덟 명의 회의는 한참 지속 되었다. 그 와중에 나는 짧은 이탈리아어로 매표소에서 배편을 알아보고, 영국 아주머니는 내가 밀라노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 때부터 나에게 질문을 하기 시작한다.

 

“ 이 마을에 최대한 오래 머물고 싶은데, 꼬모 역에서 밀라노까지 가는 마지막 기차 시간이 언제야? ”

 

이 곳 매표소 직원도 모르는 걸, 나는 밀라노에 살기 때문에 알아야 한다며. (이 분은 정말 진지하셨다.) 나는 핸드폰으로 이탈리아 열차 예매 사이트에 접속해서 시간을 알아봐주었고, 이후로도 ‘여긴 어디지? 아! 밀라노에 사는 너가 알겠구나.’ 따위의  레퍼토리는 계속되었다.

 

 

 

 


 

 

 

내가 마을 풍경은 보도 못하고 열차 시간표 따위를 알아보고 있는 사이, 이 영국 아주머니는 이렇게 해맑은 표정으로 놀고 있었다.

 

 



각자 사진 찍으며 딴청.

 

 

 

 

 

 

 


결국 ‘어떻게든 돌아가겠지’라는 훌륭한 결론을 내리고 벨라지오의 맛집을 찾아 이동한다.

 

 

 

 

 

나를 괴롭혔던 영국인 아주머니와 그의 아들 Elliott. 우리가 카메라를 들자 순간 모델 포스 발산해주신다.

 

 

 

 

마을 여기저기, 온통 노란 색이 파스텔 톤으로 칠해진 골목을 돌아다닌다.

 

 

Elliott이 길가의 벽면에서 나오는 물을 들이키더니 ‘맛있다’며 권한다.

다들 처음에는 의심하는 눈초리였으나, 그가 이건 알프스에서 흘러내려오는 물이라며 너스레를 떨자 다들 한 모금씩 시음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즐거운 방황을 계속하던 우리에게 그럴싸한 레스토랑이 눈에 들어왔다.

허기진 여섯 명은 서둘러 자리에 앉아 피자 다섯 판과 닭 요리, 와인을 주문.


 


 

  

 

식사에 앞서, 영국 아주머니가 아들 자랑을 시작한다.

그들의 이탈리아 여행은 아들 Elliott이 어머니에게 미리 주는 크리스마스 선물이라고. 게다가 Elliott은 사진을 전공하는데, 이탈리아에서 사진만 찍다 보면 선물의 의미가 없어질 것 같아서 카메라는 모두 집에 두고 왔다고 한다.


짜식. 훈남이었다. (나는 집에 계신 어머니 생각에 울컥…)

 

 

 

일본인 관광객들과도 기념촬영.

식사 중 배경이 되어주신(?!) 분은 일본 니가타시의 시장이라고 했다. 그래서 또 기념촬영.

 

 

 

 

 



식사를 마치자, 아직 시간이 이른데도 벨라지오에는 석양이 비추기 시작한다.

 

 

마을을 충분히 둘러보지 못 했지만, 해가 져버리면 더 이상 의미가 없기 때문에 다시 꼬모로 향하는 배에 오른다.

 

 

 

 

이미 해가 저문 상태, 빠르게 움직이는 배 위에서 꼬모의 야경을 담기란 불가능했다.

사진을 전공하는 Elliot이 DSLR을 이리저리 만져주었지만, 삼각대도 없이 찍은 사진들은 뭐 이정도.

 

 

Buona notte, Como.

 

 








+)

 

쇼코와 유마, 나까지 셋은 밀라노에 돌아온 뒤 꼬모에서의 아쉬운 마음을 달래는 짧은 산책을.

 

 


밀라노의 잡상인이 파는 장난감을 보고 쇼코와 유마가 신기해한다.

고무줄을 이용해서 날개 달린 작은 전구를 하늘로 쏘아 올리면, 전구에서 나오는 파란 불빛이 빙글빙글 돌며 내려오는 그런 (설명이 어렵다) 장난감이다.

 

 

올 해 5월, 내가 한국에 있었을 때, 터키로 여행을 다녀온 아버지가 선물로 주었던 그 것과 같은 것이었다. 24살이 되는 아들의 생일을 축하한다며 장난감을! 이라고 쓰고 있지만 실제로 해보면 신기하고 재미있다. 날개가 부러질 때까지 가지고 놀았던 기억이 나면서, 이번엔 집에 계신 아버지 생각에 울컥…

 

그래서 아저씨가 2유로 씩이나 부르는 걸 하나 사서 선물했다. (비싸다며 하나만 사서 시범을 보여주고 있었더니, 불쌍해 보였는지 하나 더 주셨다.)

 


 

 

 

 

 

내 페이스북 프로필에 머리가 짧을 때의 사진을 올려 놓았더니, 다들 못 알아보겠다고 한다. 쇼코가 적절한 프로필 사진을 만들어주겠다며 셔터를 계속 눌러댔다. 이 정도 개수 나온 거 보면, 본인이 보기에도 마음에 안들었나보다.

 

 





 유쾌했던 일본 친구들 Shoko, Yuma 안녕! 또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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