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 이라는 말이 화두다.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최근 몇 년간 메갈리아/워마드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페미니즘이라는 우산 아래 자국남성혐오, 혹은 여성우월주의 운동이 펼쳐져 왔다. 이른바 '미러링'이라는 명분으로, 일베 사이트에서 벌어지는 여성혐오를 남성에게 되돌려준다는 개념이다. 그러자, 당연하게도, 그건 올바른 페미니즘이 아니라는 지적이 있었다. 이러한 지적에 대항하며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의 페미니즘 운동을 하겠다는, 즉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은 필요 없다"며 비꼬아 말하는 표현이다.
남성혐오와 여성우월의 노선은 '-주의', '-운동'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기 민망한 수준으로, 그들의 생각이나 행동은 비판 또는 반박할 가치조차 가지지 못한다. 나 또한 굳이 시간과 노력을 들여 그들이 인터넷 공간에 싸질러 놓은 똥에 손가락질하며 더럽다고 지적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이라는 표현은 한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이러한 수사의 문제점은 첫째, 페미니즘의 방향성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했던 이들이 스스로 페미니즘을 '허락'하는 주체라고 믿었을 리 만무하다는 것이다. 둘째로, 더욱 중요하게는, 이 표현이 페미니즘과 관련하여, 생물학적 성(sex)을 기준으로 여성과 남성을 구분 지어, 오직 여성에게만 배타적으로 판단 권한을 부여하겠다는 것을 함의한다는 것이다. 페미니즘이 섹스와 젠더에 대한 관점을 어떻게 발전시켰는가, 라는 지점에서 바라본다면 페미니즘 담론에서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보다 무지한 시도가 또 있을까.
이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지난달 말부터 지속하여 온 유아인과 트페미/메갈리아/워마드의 논쟁이다.
최근 지인들을 만났을 때 이 사건은, 유아인의 표현과 같이, 갖은 술자리의 안줏거리가 되었다. 그리고 내 주변에는 유아인을 비판하고, 유아인을 조리돌림한 여성들에 공감한 남성이 둘 있었다. 그들의 이야기는 일차적으로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고통을 남성이 이해할 수 있겠냐"로 시작된다. 그리고 메갈리아/워마드와 남혐이 얼마나 비합리적인지 알고 있지만, "오죽하면 그러겠냐"로 끝난다. 요컨대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기 때문에 그저 그들의 편이 되어주자는 것이다.
나는 그들 남성이 근원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을 인정하고 소수자, 혹은 약자(라는 표현을 써도 괜찮다면)의 편에 서고자 최대치로 가동한 공감 능력을 존중한다. 그래서 그들에 정면으로 맞서지 않았고, 당신이 틀렸다며 공격적으로 달려들 마음은 들지 않았다. 그러나 종국에는, 익명의 집단 폭력과 그에 대한 옹호가 이 사회를 여성이 더 살기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나가는 동력이 될 수 없다고 믿는다.
유아인에 공감하지 못하는 이들의 비판 포인트는 대개 주제로부터 한참 벗어난 지점에 있다. 그가 페이스북에 올린 장문의 글에서 일목요연하게 논지를 전개하지 못했다든가, 하는 부차적인 이야기들. 그나마 주제에 맞닿은 부분은 유아인이 스스로 페미니스트임을 자처하면서 일부 여성을 적대시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그가 페미니스트인지 아닌지를 가려낼 권한은 도대체 누구에게 있단 말인가. 또 그에 관한 기준은 무엇인가. 최근 '여성학', 혹은 '여성주의'를 방패 삼아 쏟아져 나온 기준 미달의 책들을 몇 권 이상 읽은 자에게 부여되는 자격증인가, 아니면 인터넷에서 일베 말투를 그대로 흉내 내며 통쾌한 자위행위를 공유한 자들에게 씌워주는 왕관인가.
유아인이 성별을 알 수 없는 상대에게 "애호박으로 맞아봤음?(코찡긋)"이라는 멘션을 남겼을 때, 페미니스트라는 타이틀을 독점했다고 믿었던 이들은 그를 '한남충', 즉 타깃으로 설정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논쟁에서 그가 페미니즘에 관해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는 논외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다시 말해 유아인은 '누나가 허락한 페미니스트' 가 아니기 때문에 자격이 없다는 것이며, "나도 페미니스트다"라는 말은 그 자체로 비판의 대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추측건대, 유아인을 조리돌림한 이들이 원했던 결론은 정해져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작년 이맘때 배우 김윤석이 동료 여배우에게 망언을 뱉었다. 쏟아지는 비판 이후 그는 스스로 '개저씨'임을 인정하며 사과했다. 또, 팬들이 보내준 페미니즘 서적을 탐독하며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명백히 성희롱이었던 무릎 담요 발언과 유아인의 애호박 발언을 동일 선상에 올릴 수 없음은 그들이 누구보다 더 잘 알 것이다. 단지 조리돌림의 대상이 되었다는 이유로 그들에 굴복하고 "페미니즘에 대하여 더 공부하겠습니다."라고 이야기하길 기대할 수는 없다.
"페미니즘 공부 좀 해라.", "페미니즘 책 좀 읽어라."라는 것은,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과 마찬가지로, 페미니즘에 대해 발언할 권력을 본인이 속한 집단 외에는 누구에게도 부여하지 않겠다는 선언 이상의 그 무엇도 아니다. 나부터 인정하겠다. 대학에 다니며 나름 인문학도랍시고, 페미니즘과 관련한 책 겨우 한 두 권 읽은 게 전부인 것, 맞다. 그런 알량한 지식으로 이런 글을 쓰고 있는 게 고까울 수 있다. 그러나 웹상의 논쟁에서 "당신이 쓴 글에서 이러한 부분이 여성에게 차별적/폭력적이며, 페미니즘 정신과 맞지 않는다."라는 지적은 사라져 버렸다. 페미니즘 책 좀 읽으라는 이들은 과연 제대로 페미니즘 공부란 걸 해봤을까. 만약 그렇다면 어찌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는 근원적 자격으로 생물학적 성을 정해버린 것일까. 더 심각하게는, 아무런 이유 없이 성 소수자들을 남성과 엮어 도매금으로 혐오하는 메갈리아/워마드에 어찌 비판적이지 않을 수 있을까.
이 블로그에 유입되는 몇 안 되는 사람들에게 이 글이 어떻게 비칠지 모르겠으나, 마치 유아인을 동정하는 글처럼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째서 방구석에서 키보드나 두드리는 사람이 현재 가장 잘 나가는, 그리고 앞으로 가장 촉망받는 배우를 동정하겠는가. 반대로 유아인을 예찬하는 글로도 읽히지 않았으면 한다. 이 사건 이후로 '빛아인'이니 뭐니 하면서 그를 떠받드는 행위는, 마치 그가 남성을 대표해서 여성과 싸운 것처럼 보이는 착시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것은 이분법적으로 성을 구분하고 그 사이 대결 구도를 만드는 유치한 결과밖에 불러일으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단지, 스스로 '페미니스트'라는 딱지를 붙이고 싶은 이들이 한 번쯤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개저씨'를 혐오하는 것과 모든 한국 남성을 벌레로 취급하는 것이 어떻게 다른지. "나도 페미니스트"라고 주장하는 인간 엄홍식을 간편하게 '일베'로 만들어 버리고 조리돌림하는게 나을지, 아니면 상호 비판적으로 토론하며 연대하여 함께 투쟁하는 게 나을지. 물론 나는 그가 이 모든 사건을 겪은 이후에도 다른 페미니스트들과 손잡고 사회·문화적으로 억압받는 여성을 위해 싸워줄 준비가 된 사람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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