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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mpolitics

탄핵 이후 개헌 논의의 문제점




 지난 주 금요일, 헌법재판소에서 대통령의 파면을 선고했다.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안 가결로부터 헌재의 결정이 나오기까지 약 3달간, 뉴스에 끊임없이 등장한 단어 중 하나가 바로 '개헌'이다. 대통령이 헌법에 위배되는 행위를 했다고 하여 심판 중인데, 그 와중에 정치인들은 헌법을 고치자고 주장하는 상황이다. 심지어 JTBC가 최순실의 태블릿PC를 보도한 당일에도 대통령은 국회를 방문해 개헌 카드를 꺼내들었다. 정작 투표의 당사자가 될 국민들에게는 논의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누군가는 끊임없이 개헌으로 주의를 환기시키고자 했다.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개헌 논의가 수면 위로 올라오기 시작한 것은 당시 여당이었던 새누리당이 지금은 모두에게서 잊혀진 반기문 전 UN사무총장을 영입하고자 애쓰던 그 때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에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가세하여, 개헌을 고리로 이른바 '빅 텐트'를 세우자는 주장이 펼쳐졌다. 원내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 혹은 같은 당에서 여론조사 지지율 1위를 달리던 문재인 전 대표를 제외한 나머지 정당과 대선 주자들이 개헌이라는 기치 아래 모이자는 이야기다. (민주硏 보고서 "개헌 고리 제3지대, 대선에 치명적 위협")




 수면에서 잠길듯 말듯 연명하던 개헌 논의는 탄핵 직후 활개를 치기 시작했다. 헌재에서 탄핵을 인용한 그 역사적 순간으로부터 10분도 지나지 않아, 국회의 소추위원장 직을 맡았던 바른정당 권선동 의원은 재판소 건물 앞에서 소감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기다렸다는 듯 개헌 이야기를 뱉어냈다.






 같은 날, JTBC에서 "탄핵 심판 이후 대한민국, 어디로 갈까?"라는 주제를 놓고 특집 토론을 가졌다. 여기에 패널로 참여한 자유한국당 정태옥 의원 역시 토론 말미에 개헌이라는 주제가 나오자 유달리 힘주어 말하기 시작했다. 그의 주장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1) 87년 이후 여섯 명의 대통령이 모두 임기 말에 '불행한 상황'을 맞이한 것은 전부 헌법의 권력 구조에서 기인한 것으로 볼 수 있고,


(2) 두 가지 조항만 바꾸면(제70조: 5년 단임 → 4년 중임제 / 제86조: 국무총리는 대통령이 임명 → 국회가 선출)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될 것이며,


(3) 그 것이 두 달 남은 대선 이전에 가능하다






 위의 세 가지 포인트 중 어느 것 하나 말 같은 소리가 없지만, 그나마 필요한 부분은 같은 토론에 참여했던 유시민 작가가 충분히 반박했기 때문에 굳이 다루지 않아도 될 것으로 보인다. (해당 토론을 보면, 최근 '보살'로 평가받는 유시민 작가가 흥분하는 모습을 오랜만에 볼 수 있다.)






 이 글은 최근의 개헌 논의가 어딘가 어색하고 불편하다는 점을 지적하기 위해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분명히 해야할 것은, 개헌 자체를 반대할 이유는 없으며 다음의 두 가지 사실은 인정할 만하다는 것이다. (1) 우리나라 헌법의 권력구조는 대통령제를 기반으로 하여 의원내각제의 요소(국무총리 등)를 일부 차용하였다고는 하나, 그러한 요소가 사실상 유명무실하고, (2) 다수의 헌법학자와 정치학자 역시 (1)의 문제 의식으로부터 도출되는 개헌에 동의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



 또한, 현 시점에 많은 정치인들이 개헌을 번갯불에 콩구워먹듯 해치우자고 주장하는 것은 어쩐지 그 의도가 미심쩍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한 대선주자의 주장처럼 그들의 '선한 의지를 인정하는 것이 대화의 시작'이기 때문에 그 부분을 다루지는 않는다.






 대부분의 현대 민주 정치 체제가 그러하듯, 우리나라 역시 삼권분립에 기초하여 권력이 분산되어 있다. 그리고 행정부의 수장인 대통령이 권력을 남용하여 문제가 된 현 사태는 입법부의 견제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것은 과연 국회의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제왕적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하고 그것을 입법부로 가져오기만 하면 만사형통일까?



 삼권분립의 균형과 견제는 대통령의 막강한 권한으로 인하여 불가능했다기보다, 정당정치의 허점 아래 희생되었다고 보는 편이 더 맞을 것 같다. 19대 국회는 임기 중 대부분의 기간 동안 새누리당의 의석 수가 과반 이상이었고, 새누리당 출신 의원이 의장을 맡았으며, 상임위원회와 특별위원회의 위원장 역시 새누리당 의원이 과반 이상을 차지했다. 박근혜라는 인물에 대해서 같은 당 정치인들이 가졌던 검증의 시간 역시 충분했다. 2012년에 혜성처럼 등장한 인물을 외부영입하여 대선에 뛰어든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같은 정당에서 4선을 지낸 의원이었고('소동'이라 불릴만한 수준의 탈당 사태가 있긴 했다.) 당 대표를, 위기 속의 비대위원장을, 그리고 대통령 후보를 역임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새누리당 의원들은 어떠한 방식으로 그들의 견제 권한을 행사하고 있었는가. 대통령이 공무원 임면권을 남용하든,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든, 어디서 나온 발상인지 확인할 수 없는 정책을 펼치든, 묵인하고 방관해온 것은 아닌가. 와 같은 합리적 의심이 가능하기 때문에, 현 시점에서 반드시 개헌을 논의해야 한다면 대통령을 탄핵하고 그칠 것이 아니라 국회 또한 불신임의 대상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정치인의 행위는 항상 두 가지 책임이 따른다. 하나는 정치적 책임이고, 다른 하나는 법적 책임이다. 예를 들어, 국정 농단 스캔들이 고구마 줄기처럼 줄줄이 세상 밖으로 새나오기 시작했을 때 만약 박근혜 전 대통령이 하야를 선택했다면 그것은 정치적 책임을 다하겠다는 의지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오로지 헌법적 관점에서만 피동적으로 책임을 지게 되었으며 이제는 사법적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앞으로 검찰과 법원에서 박 전 대통령이 뇌물을 받은 것인지, 혹은 기업에 금품을 강요한 것인지, 그리고 최순실이라는 개인에게 국정 권한을 어느 정도로 위임하였는지 등을 조사하고 판단할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자연인이 된 박근혜를 법률에 의해 처벌한다고 해도, 파행으로 치닫은 국정의 책임은 모두 사라졌다고 할 수 없다.



 현 사태의 법적 책임은 비껴갈 수 있으나 정치적 책임으로부터는 자유로울 수 없는 집단이 있으니, 이는 바로 의회 내 (구)여당이다. 전·현직 장·차관과 비서실장, 정책조정수석, 비서관이 구속되고 있을 때, 현 사태의 법적 책임을 겨우 비껴갔음에 안심하고 있을 정치인들의 행보는 과연 가관이다.



 일부는 당을 뛰쳐나와 창당을 하고 대통령과의 거리두기를 했다. 공천에서 학살당했을 때 '빼액'거린 사실을 제외하고는, 4년간의 국정에 대하여 일언반구도 없었던 사람들이다. 이제와 야당 행색을 하고 대통령을 비판하는 것으로 인들의 정치적 책임을 다했다고 보는 모양이다.



 그보다 더 많은 숫자의 사람들은 새누리당의 자산이 아쉬웠는지, 당에 남아 아무런 명분 없이 당명을 바꾸는 것으로 만족했다. 다만, 외부 종교계 인사가 비대위원장으로 임명되어 강력한 개혁 의지를 가지고 구태를 청산하려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는 했다.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당내 중진 의원들과 입에 담기 어려운 공격을 주고 받는 모습을 미디어에 노출시켰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의 행보에 발을 맞추기 시작했다(새누리 인명진 “박 대통령은 국격…징계 안 하겠다”). 일부 의원들은 탄핵 반대 집회에 나가 선동적인 언사를 서슴치 않았으며, 현재는 탄핵된 대통령의 사저에 모여 서로를 위로한다고 한다.




 새누리당 계열의 의원들이 주장하는 개헌의 방향은 몇 가지 유형으로 좁혀진다. 대통령제를 유지하되 4년 중임제로 전환하고 총리 임명 등의 일부 권한을 국회로 이전하는 방안이 있고, 이원집정부제(분권형 대통령제) 또는 의원내각제로 권력구조의 틀 자체를 바꾸는 방안이 있다. 세 가지 모두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한 처방으로 행정부의 권한을 축소하고 이를 입법부로 이양하도록 제안한다. 앞에서 밝힌 것처럼, 원론적인 개헌의 방향성에 대해서는 부정할 이유가 없다. (의원내각제로의 이행을 반대하는 입장에서, 우리나라의 정당 정치가 그만큼 성숙하지 못했기 때문에 적절치 못하다는 의견이 있지만, 나는 반대로 해당 제도가 정당과 시민이 정당을 인식하는 수준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부분은 추후 자세히 다루기로 하자.)


 그러나 현 시점에서 개헌에 가장 큰 목소리를 내고 있는 이들로부터 전제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의회가 보다 많은 권한을 가지는 의원내각제 또는 이원집정부제 하에서는, 원칙적으로 의회 해산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물론 여기서 의회 해산은 독재의 수단으로써 (현재 파면당한 대통령의 아버지가 그러했듯) 헌법을 유린하는 행위가 아니라, 국민에게 재신임을 묻는 행위이다. 여러가지 변수로 인하여 총리가 국정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면, 총리 혹은 대통령은 국회를 해산함으로써 예정된 총선을 앞당길 수 있다. 연정이 중단되든, 국정 이슈가 해결되지 않든, 내각의 인기가 바닥을 치든, 상황의 해석을 국민에게 돌린다는 뜻이다.



 2달 후 치뤄질 대선에서 정권교체가 이루어진다고 가정하더라도, 필연적 여소야대 상황에서 자유한국당은 제1야당이다. 만약 의회가 내각을 구성하는 방식의 총선이었다면, 그들은 현재 가진 94석의 의석 수를 지킬 수 있을까. 그리하여 모 대선주자가 주장하는 것처럼, 대연정의 파트너로 거론될 수 있을까.



 자신의 정당에서 나온 대통령이 정치적 파국을 초래한 이 상황에서 개헌을 주장하고자 한다면, 적어도 본인의 정치적 책임을 다하는 의미에서 본인의 재신임을 물어야 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


 내용이 길어지다 보니 이 글에 포함시키지는 않았으나, 계속해서 힘주어 이야기한 '정치적 책임'이 가장 무겁게 주어지는 직 중 하나가 바로 국무총리일 것이다. 대통령의 집무가 정지되는 상황에서도 당사자에 의해 지명된 국무총리가 그 권한을 대행하는 것은, 당장 행정부의 공백이 가져올 수 있는 혼란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우리의 권한대행은 그러한 본래의 목적에 맞는 역할은 전혀 하지 못하면서 (교안 대행, 불가능한 지시… AI 이어 구제역도 초기대응 실패) 박근혜 정부에서 추진해온 정책 중 가장 논란이 되었던 일들을 완수하는 데에 총력을 기울이거나 ('막무가내' 정부…"국정교과서 신청 방해? 형사고발"사드 발사대 2기 오산미군기지 도착), '의전왕'이라는 위상에 걸맞는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황교안 ‘권한대행 시계’에 야권 “대통령 놀음”).



 개헌을 해야겠다면, 위와 같이 법 취지에 맞지 않는 통치 행위를 방지할 수 있는 조항을 검토해야 할 것으로 보이는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