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Contempolitics

박원순 서울시장 당선, 그 이후.







박원순 범야권 단일후보가 지난 26일 서울시장에 당선되었다.



유난히도 요란스러웠던 재·보궐 선거다. 시민 뿐 아니라 전 국민이 관심을 쏟았다. 투표율로 따지자면 역대 재·보궐 선거들중 2위를 기록했다고 한다. 이렇게 폭풍처럼 몰아친 관심은, 과연 어디서 생겨난 것일까?

첫째로, 그리고 당연하게도 수도 서울의 자치단체장을 선출하는 선거라는 점이 가장 컸지만 이에 더해, 오세훈 전 시장이 이미 시끄럽게 판을 벌려놓은 상태였고, 마지막으로,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으로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지난 28일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장 직은 사임했다) 안철수가 몰고 왔던 바람의 여파가 컸다.


그 진원지가 어찌 됐든 간에, 관심이 가장 집중되어야 할 부분은 따로 있다. 바로 박원순의 당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제 1 야당인 민주당을 포함하여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국민참여당, 창조한국당이 지지한 범야권 단일후보가 무소속이다? 이상한 일이다. 정당의 존립은 공직에 후보자를 출마시켜 권력을 잡는 것에 달려 있고, 그렇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분명 이상한 것이다. 이 점을 설명하고자 할 때, 단적으로는 민주당을 포함한 야권의 부족한 인력 풀을 문제 삼을 수 있겠다. 시기상으로는 민주당의 공천이 먼저 이루어졌지만, 사실상 그 이전부터 한나라당의 후보는 나경원 전 의원으로 인정하는 분위기였고, 민주당은 그러한 '스타 정치인' 나경원을 인지도 등의 측면에서 상대할 만한 후보를 내기 어려웠다. 뿐만 아니라, 혜성같이 나타난 안철수라는 비(非)정치인이 민주당의 지지도를 고스란히 가져갔다. 엎친 데 덮친격으로, 안철수는 그의 정치적 스탠스를 직접 밝히기를 "反 한나라, 非 민주"라고 했다.

이렇게 박원순의 당선은 필연적으로 安風으로 거슬로 올라간다. 애초에 자신의 입으로 서울시장 출마 의사를 밝힌 적도 없이 폭발적인 지지를 얻어낸 안철수, 그리고 그 지지를 이어받은 이가 박원순이기 때문이다. 안철수에 비해 박원순은 非 민주당의 색채가 약했지만, 그가 잡은 캐치프레이즈는 '변화'였다. 그리고 언론은 그러한 지지를 '기성 정당정치에 대한 불신'이라고 해석했다. 박원순 본인이 그러한 이야기를 직접 했든 안 했든 간에.


'기성 정당정치에 대한 불신'이라는 말은 쉽게 이야기해서 한나라당과 민주당이라는 두 개의 선택지가 더 이상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말이다. 다시말해, 한나라당이 싫어서 민주당에 표를 던진다거나 그 반대의 경우를 행해야 하는 투표가 지겹다는 것. 여기에 생략된, 그러나 내가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군소정당에 사표(死票)를 던지는 행위를, 우리는 자연스레 배제한다는 것이다.

양자택일 상황에서 차악(次惡)을 고르는 일이 더이상 유효하지 않을 때의 최선(最善)은, 어느 신문사의 박원순 당선 기사 제목처럼, '정당정치 퇴출명령'일까. 선동처럼 보이는 이러한 문구의 과장, 그리고 허구성을 보이고자 함이 이 포스팅의 목적이다. 간단히, 그리고 원칙적으로 말해서 복수의 정당에 의한 정치는 헌법에 보장되어있는 사실이다. 너무 뻔한 이야기는차치하고, 앞으로 2년간 보여질 박원순의 시정을 前 오세훈 시장을 통해 예상해보자.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사퇴는 그 근원이 '시의회 차원에서의 여소야대 형국'에 있다. 국가 차원에서 대통령이 속한 당이 국회 내에서 다수를 차지하지 못 했을 때, 국정이 종종 난관에 부딪히게 된다는 사실은 누구나가 알고 있다. 구조상 집행부에 더 많은 권한이 주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중적으로 의회에 권력적 정당성을 부여함으로써 서로를 통제하도록 하는 것이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이다. 오세훈의 경우, 민주당 한명숙 후보와의 대결에서의 승리를 무상급식이라는 담론에 관한 자신의 승리로 해석했던 것 같다. 그러나 무상급식에 관한 자의적 행정은 서울시의회의 다수당인 민주당에 부딪혔고, 오세훈은 주민투표라는 무리수를 들고 나왔다. 거기에 재신임이라는 양날의 검까지 더했지만, 그 결과는 처참했다. (오세훈이 정치적 역량을 잃어버린 정도는, 안철수가 그 것을 가지게 된 것과 같이 순식간이었다.)

박원순의 경우, 앞에서 나열한 다섯 정당과 시민사회의 지지를 얻어 당선된 특수한 상황이다. 그러나 해당 정당들을 박원순의 지지기반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만약 서울시의회의 과반수를 장악한 민주당과의 후보 단일화 없이 당선되었다면 박원순은 정책 추진에 있어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을 테고, 민주당을 등에 업은 현재로서는 민주당에 끌려갈 가능성마저 보인다. 물론 이 것은 서울시장 본인의 정치적 역량에 달려있다 하겠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무소속 당선자는 여소야대 형국보다 더 불리한 상황에 처한다. 따라서 그는 의회에서의 다수당과 정책적 공통 분모를 끊임없이 모색하거나, 또는 (오세훈/노무현과 같이) 끊임없이 볼멘소리를 해대며 시민과 국민에 직접 호소하는 수밖에 없다. 이 것이 무소속 당선자의 운명이다. 쉽게 말해, 정치는 집행부의 수장이 혼자 해먹는 그런 게 아니라는 말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박원순은 운 좋은 서울시장이다. '反 한나라'라는 공통의 기치 덕에 2년간의 시정에서 박원순과 민주당의 마찰은 크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박원순은 앞으로의 시정 뿐 아니라, 당선 과정에서도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다. 그는 나경원과의 TV 토론에서 자신의 정책적 치밀성을 한 번도 제대로 증명하지 못했다. TV 토론을 지켜본 대학생들 사이에서 '차라리 박영선 의원이었다면' 이라고, 경선 결과를 뒤늦게 후회하는 듯한 말이 나오기도 했다. 여론조사에서 박원순의 당선은 불투명해졌다. 그만큼 토론에서 나경원의 '말빨'은 박원순을 눌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원순은 오히려 그 상대가 나경원이었기 때문에 당선될 수 있었다. 나경원이 스스로 '스타 정치인'의 한계를 벗어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선거는 '스타 정치인' 대 '시민운동가' 의 이미지의 대결에 불과했고, 모두가 알다시피, 만들어진 박원순의 이미지는 그 5할 이상을 안철수에게 빚진 상태였다. 가까운 미래의 대선, 혹은 지자체장 선거에서 박원순만큼 운이 좋은 인물은 또 나오기 힘들 것이라고 본다. 





대통령제가 양 거대정당에 유리하게 작용한다는 것은 법칙이다. 또한 양당제 하에서 두 개의 거대정당은 (가능한 많은 표를 얻어야 하는 숙명 때문에) 그들이 속한 사회의 중도를 위한 정책을 펼친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서로 닮은 꼴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렇게 한나라당과 민주당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이 '탈정당정치'일 수는 없다. (정당의 기능이나 직접민주정치의 비현실성에 대해서는 일단 생략하고 다음 포스팅에 맡기기로 하자.)

다행히 우리나라의 정당 제도는 완벽한 양당제라 할 수 없으며, 시대의 변화에 따라서 갈라져 나오는 국민의 목소리를 수렴할 수 있는 정당들이 상당수 존재한다고 본다. 시민들 자신이 단지 사표(死票)를 던지기 싫다거나, 자신의 정책적 지향과 가장 잘 부합하는 정당을 찾고 평가해 볼 만큼 부지런하지 않기 때문에 거대 양당을 끊임없이 존속시키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앞에서 탈정당이나 직접민주제가 비현실적이라고 했으나, 최종적으로 지향하고 이루어야 할 이상(理想)과 목표라고 인정 한다면, 그 비약의 중간에는 '다당제'라는 흐름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 것이 박원순 범야권 후보의 당선이 보여주는 진정한 결과가 아닌가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