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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mpolitics

당신의 선택이 차악(次惡)에 머무르는 이유




얼마 전 지인을 만나 이런저런 근황을 이야기하다, 주제가 정치 이야기로 흘러갔다.


그는 불평을 늘어놓았다. “왜 항상 우리의 선택은, 그나마 덜 나쁜 사람을 뽑는 것에 그쳐야 하는 거죠?순간, 그보다 며칠 더 앞서 들었던 비슷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택시를 타고 이동하던 중에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시청자의 사연이었다. “대통령 후보라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도토리 키 재기 하는 것 같아요”.


정확한 인용인지는 기억할 수 없으나, 그들은 정치에 있어 그들의 선택이 차악에 머무르고 있음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었다.



양쪽 모두 푸념에 불과했기 때문에 굳이 답을 하지는 않았(거나 할 수 없었)으나, 답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건 당신이 대통령을 선택하고자 하지만, 그 후보를 선택하는 일에는 관심이 덜하기 때문이겠죠’.




어제 있었던 SBS의 대선후보 첫 토론회.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는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에게 질문했다. “안철수 후보님은 우파입니까, 좌파입니까?” 그러자 안철수 후보는 저는 상식파입니다.”라고 답했다. 이어서 안철수 후보는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에게 묻는다. “이 문제는 즉답하셔야 됩니다. 대통령은 지지자의 대통령입니까, 아니면 전 국민의 대통령입니까?” 역시 문재인 후보는 다음과 같이 답한다. “전 국민의 대통령이며, 저는 모든 국민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여러 번 말씀드리고 있죠”.




"저는 상식파입니다."




색깔이 아주 뚜렷한 후보가 색깔이 불분명한 후보에게 당신의 색깔을 밝히라고 공격하고, 그렇게 공격받은 후보가 자신보다는 조금 색상이 짙어 보이는 후보에게 당신은 색깔이 분명한 후보 아닌가며 공격하는 이상한 블랙코미디의 현장이다. 조금 더 명료하게 표현하자면, 이번 탄핵 사태로 인하여 무주공산이 되어버린 보수, 혹은 우파의 영역에서 홍준표 후보는 여기가 원래 내 땅이라 주장할 때, 안철수 후보가 열심히 말을 달려 그곳에 깃발을 꽂으려 했고, 문재인 후보는 여기저기 눈치 보며 그의 발목을 잡고자 하는 형국이다. 토론에서 그나마 자신의 정치적 양심에 가책을 느끼지 않았을 사람은, “보수가 적자(嫡子)를 둔 적이 없죠.”라고 말한 바른 정당의 유승민 후보이지 않았을까.



위와 같은 맥락의 발언은 이전부터 수차례 되풀이되었다. 국민의당이 경선을 마치고 안철수 의원을 후보로 확정하는 시점이었다. JTBC 뉴스룸과의 인터뷰에서 손석희 앵커가 보수 표심을 더 끌어와야 양자 대결, 혹은 양자 구도가 더 확실해질 수 있는 상황에 대해 질문하자 안철수 후보는 다음과 같이 일축했다. “지금은 진보, 보수, 중도, 그러한 것이 중요한 때가 아닙니다. 지금은 사실은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자고 모든 국민들이 원합니다. 정의에 진보나 보수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리고 미래에 대해서 대비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거기에 진보, 보수가 어디 있겠습니까? 저는 정의로운 사회, 어떻게 만드는가? 그리고 제대로 미래를 대비하는 것으로 평가받겠습니다.”



"정의에 진보나 보수가 어디 있겠습니까?"



안철수 후보는 사드(THAAD) 미사일 도입을 단호하게 반대하여 왔다. 그러나 최근 특별한 명분 없이 찬성으로 입장을 바꾸었는데, 이와 같은 극적인 변화는 좌측 심상정 후보부터 우측 홍준표 후보까지 전 영역에서의 공격 대상이 되었다. 안철수 후보의 말 바꾸기예상치 못하게 보수 유권자를 대변하게 되어 버린 국민의당의 전략적 선택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비단 경쟁 후보자뿐이 아닌 것 같지만, 유독 당사자만은 그렇지 않다고 항변한다. 이는 안보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전 대통령과 기업 총수라고 하는, 보수의 아이콘과도 같은 인물들과 관련하여 실형이 확정될 경우 사면을 고려하겠는가라는 질문에, ‘국민에 뜻에 따라야 한다.’라는 이른바 국민을 향하는 정답을 강변한다. 이것 뿐이겠는가. 사설 유치원 원장 모임에서 펼쳤던 주장은 며칠 지나지 않아 전국의 부모 앞에서 오해로 둔갑된다.



현 상황을 놓고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본다면, 그들의 선택이 항상 차악에 머물러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지 않은가. 그것은 그들이 다섯 명으로 좁혀진 최종선택지를 놓고 고민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그런 볼멘소리를 하기 이전에 누군가는, 자신의 정당에서 누가 대선 후보로 선출되어야 할지를 놓고 고민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보다 이전에, 특정 정치인이 경선 후보가 되도록 지지했을 수도 있다. 그보다 더 앞으로 돌아간다면, 자신의 정책적 성향과 가장 잘 부합하는 정당은 어디인지 고민했다는 사실은 말할 필요도 없다.



물론 그렇게 마음 속으로부터 지지해온 정치인이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그들은 더할나위 없이 흡족할 것이다. 마치 테일러 명장이 그들 각자에게 맞춰 수트를 재단해준 것처럼. 그러나 너무나 당연하게도, 열심히 참여한다고 언제나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대의민주주의 체제에서 그들이 원하는 정책 방향을 적극적으로 표출한 것이고, 그러한 의견이 쌓여서 당의 후보자가, 더 나아가 대통령이 그러한 방향을 고려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추측컨대, 차악을 선택해야 한다는 사실에 개탄하는 이들은 이러한 최소한의 노력을 하지 않았을 공산이 크다. 국민대통합을 외치는 후보가 5천만이나 되는 국민 모두의 마음에 쏙 들 수 있다는 환상을 가지면서. 차라리 마블의 히어로가 대선에 나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빠르지 않을까.

 



정의, 상식, 합리성, 그리고 국민. 지극히 옳지만 너무 당연해서 아무 의미가 없는 이 키워드에 대선 후보는 집중하게 되어있다. 그것은 5년 반 전에 블로그에 게시했던 글에서 지적했던 것과 같이, 두 개의 대중정당이 가능한 중도를 향하고자 하는 숙명으로부터 비롯된다.



안철수 후보는 정말 '정의'라는 카테고리에 진보와 보수가 없다고 생각했을까.



진보 성향이든, 보수 성향이든 당원이 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억척스러워 보인다거나, 어딘지 모르게 모난 것처럼 보이는 모양이다. 그래서 우리는 국민으로서 투표권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게 여기지만 정당에서 권리를 얻는 것은 주저한다. 또한 정당은 권리 당원에게 주어야 할 경선 투표권을 국민 모두에게 확대한다.



탈이념의 시대에 살고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에게, 누구도 좌파와 우파의 이데올로기 중 하나를 택하라며 사상검증을 강요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정당이 발전하지 않으면 매 선거마다 후보들은 외칠 것이다. “나의 정책이 가장 상식적이고 합리적이며, 내가 가장 능력있는 후보로서 서민이 잘 살고 기업성장하는, 그런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겠다. 그리고 그 모든 상식성과 합리성, 능력과 미래 비전을 판단하는 기준에 자신의 철학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건 선거 공학으로 결정할 문제기 때문에.


진보도 싫고 보수도 싫은, 사안에 따라 하게 합리적인 판단을 하는 유권자의 입맛에, 어떤 후보의 정책이 맞을 것인지는 영원히 미지수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