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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uary 2, 2011
the Dead City, 죽은 도시에 방문하는 날.
어제, 버스 터미널까지 걸어서 15분거리를 헤맸던 기억이 나서, 택시를 잡는다.
여느 때처럼, 창문 넘어 'bus terminal'이라고 이야기하는 나에게, 택시 기사는 무조건 타라는 시늉을 한다.
이젠 놀라울 것도 없지만 그는 기본적인 영어조차 말할 줄 모르고, 호텔 주위를 돌며 통역해 줄 사람을 찾기 시작한다.
호텔 벨보이를 불러 내가 버스 터미널에 간다는 사실을 인지한 후엔, 버스를 타고갈 목적지를 묻는다.
그리고 터미널까지 가는 동안은 자신이 그 곳까지 데려다주겠다며, 턱없는 가격을 제시한다.
영어가 안 되기 때문에, 의사소통은 바디 랭귀지, 그리고 핸드폰에 숫자를 입력하는 등의 방법으로 이루어진다.
짜증을 내며 터미널까지 가자고 다그쳐 겨우 도착하면, 미터기에 찍힌 돈의 두 배를 요구한다.
저 멀리 경찰이 보인다.
시리아에 오기 전에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 - 택시 기사들과 문제가 생기면, 경찰을 부르겠다고 협박하라고.
민주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시리아는 공권력이 강해서, 그들을 겁주는 가장 확실한 수단이 된다.
예전에는 외국인 관광객과 시비가 붙은 택시 기사가 바로 추방당한 경우도 있다고 한다.
참 편하고, 괘씸한 놈들 혼내주는 통쾌한 방법이긴 한데,
생각해보면 참 비극적이다. 시민이 경찰을 그토록 무서워해야 한다는 사실이.
내가 태어나기 전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였을텐데.
그냥 내가 참지, 라고 생각하며 버스에 올라 카메라를 꺼냈는데,
어라. 메모리 카드를 빠뜨리고 왔다. - 일진이 좋지 않은 날인가 보다.
그래서 오늘의 포스팅엔 글만 가득할 예정이다.
버스를 타고 오늘의 목적지 Serjilla로 향하는 길.
버스 기사가, Serjilla 역시 주변이 허허벌판이라는사실을 알고,
한시간 정도를 기다려 다시 알레포까지 데려다 주는 옵션을 제안한다.
말도 안 통하는데 이런 협상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신기할 따름이다.
그러나, 역시 말도 안 되는 가격에 버스를 돌려보낸다.
어제 프랑스인 가족과 함께하면서 자신감을 얻었나 보다.
'이 나라에서 안 되는건 없으니까.'
어디가 안 그렇겠냐먀는,
오늘 방문한 the Dead City는 카메라를 안 가져왔다는 사실이 너무 아쉬운 장소다.
5세기 후반 사람들이 모여살기 시작하다가,
8세기에서 10세기 사이 알 수 없는 이유로 갑자기 버려져,
문자 그대로 죽은 도시가 되어버린 곳.
아무래도 글이 심심하고 아쉬우니, 구글링한 사진을 첨부.
(source: gohistoric.com)
오늘은 특히 안개가 자욱해,
으스스한 분위기까지 더해진다.
지금까지 보았던 웅장한 신전과 성채에 비하면 건물들은 볼품 없지만,
나에게는 오히려 더욱 인상적이다.
이런 곳에 와서 관광객이 하는 일이라면
첫 째로 유적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것일 테고,
둘 째는 '과거에 사람들은 이렇게 살았겠구나'라고 상상해보는 일인데,
이 곳은 신전과 성채만 존재하는 곳에 비해 두 번째 즐거움, 즉 상상력을 조금 더 풍부하게 해준다.
정말 사람이 살던 가옥들이 주를 이루고,
종교 의식이 행해지던 장소와 저수지, 공동으로 사용하던 목욕탕 등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역시 풀만 무성히 자라는 버려진 도시, 영화 속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다.
한참 이 곳을 둘러보고, 가까운 Dead City 한 곳을 더 보기로 한다.
이름은 Al-Bara. 걸어가기에는 먼 거리지만 일단 무작정 걷는다.
한 20분쯤 걸었나. 나를 지나친 차 한 대가 저만치 앞에 서 있다.
운전 석에서 문을 열고 내린 아저씨가, 뒤를 돌아보며 빨리 오라고 손짓한다.
잰 걸음으로 가서 내가 가고자 하는 "Al-Bara"를 이야기하자 2인승 트럭 한 칸에 내 자리를 마련해준다..
나의 합승을 허락해준 이 아저씨는,
힘든 영어로 자신이 초등학교 선생님이라고 이야기한다.
서로 거의 알아듣지는 못 해도,
나름 대화란 걸 하면서 도시에 도착.
했는데, 이 곳은 유적지(dead city)가 아닌, 사람들이 살고 있는 도시다.
'응?'
나중에 알고보니 Al-Bara는 유적지의 이름이기도 하고, 그 주변 마을의 이름이기도 하다.
이걸 다시 설명하기도 참 어렵고, 다시 지도를 보며 걸어가야하나, 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나를 태워다준 아저씨가 "Do you drink tea? in my house-" 라며 나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한다.
전에 이야기했듯이, 시리아에서는 이런 저런 이유로 외국인에게 권하는 '물'과 '차'를 조심해야 한다.
그런데 이 아저씨가 가진 온화한 인상과 인자한 목소리에, 모험을 해보기로.
시리아 현지인의 집에 가보게 되다니!
확실히 위험한 선택이기는 하지만, 아무나 해보지 못하는 경험인 것 같아 꼭 가보고 싶다.
집에 도착하여 아저씨는 안방쯤 되는 곳에 나를 앉히더니,
곧 온 가족이 모이기 시작한다.
아이는 둘, 셋쯤 있는가 싶었는데 점점 늘어나 일곱명이 북적북적.
여기 저기 전화를 해서 사모님과 형님까지 부르신다.
사모님은 홍차와 각종 과일을 내오신다.
이렇게 극진한 대접을 기대한 건 아니었는데... 조금 부담스럽다.
학교에서 영어를 배우는 아이들이, 속닥속닥 거리다가 교과서를 보며 나에게 질문을 하나씩 던진다.
"How old are you? 부터, Do you have brothers or sisters?, What is your favorite sports?" 까지.
집 주인의 형님 되시는 아저씨가 그나마 영어를 문장 단위로 이야기한다.
한국 사람들은 시리아를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는다.
솔직히 한국 사람들은 중동 국가들을 좀 위헙한 곳이라고 생각한다고. 시리아는 대한민국과 국교조차 없으니까.
그런데 직접 와서 보니 정말 아름답고 좋은 나라라고 답했다.
그 분이 갑자기 목소리를 높인다. 한국은 시리아에 외교관을 보내야 한다고.
뉴스에서 보니 미국은 5년째 시리아에 외교관을 안 보냈다며,
한국은 미국과 친구겠지만 미국은 이스라엘을 도와주니까 시리아의 적이라는, 그런 이야기로 목청을 높이신다.
시리아까지 망명와서 택시기사를 하고 있는 팔레스타인 사람과도 이런 이야기를 나누어보았지만,
이 주제에 관해서만큼은 이스라엘과 미국이 '악의 축'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그 와중에, 갑자기 나에게 종교가 뭐냐고 물어본다.
왜 그 순간 내가 지나쳤던 유적들의 역사란게 전부 crusader와 muslim의 싸움이었다는 게 생각났을까.
말을 더듬는다. I’m a, um. 뭐 뭐라고 둘러댔어도 상관은 없겠지만, 거짓말은 하기 싫다.
카톨릭이라고 답한다.
별 반응이 없다. 흠. 쓸데 없는 걱정을 한 걸까.
나를 돈벌이 상대로 대하지 않는 시리아 사람들과의 대화.
아주 단편적이긴 하지만, 그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 지를 훔쳐볼 수 있는 시간.
왠지 모르게 편안하고 기분이 좋다.
그래도 시간이 너무 늦어진다 싶어,
집을 나오며 "shukran"을 반복한다.
아저씨는 인자한 미소로 답하신다.
집 앞까지 마중나와, 이제 어디로 가는거냐 묻는다.
유적을 돌아보기에는 이미 해가 지고 있고,
일단 알레포에 돌아간다고 하니, 잠깐 기다리라고 한 뒤 펜과 종이를 들고 나온다.
내 이름과 한국 주소를 영어로 적어달라고.
그렇게 정말 말도 안되게 이루어졌던 따듯한 만남을 접고,
너무 작은 마을이라 버스도 잘 다니지 않는 이 곳에서,
이제는 수십km 떨어진 알레포까지 겁도 없이 걷기 시작한다.
다시 한 번 어렵지 않게 히치에 성공.
내가 히치에 익숙해졌다기보다는,
인적이 드문 거리에서 여행자 혼자 걷고 있으면
사람들은 차를 세우고 목적지를 묻는다.
정감이 가는 시리아 사람들.
다마스커스까지 구경하고 싶은 곳이 너무 많다.
그래서 오늘 저녁은 알레포를 떠나 다음 도시 Hama로.
다시 터미널에 도착해 하마로 향하는 버스를 기다린다.
이 곳 터미널에는 흔히 구두닦이가 보인다.
언제나처럼 손을 저어보이며 됐다는 의사표시를 하려는데,
내 앞에 10살도 안 되어 보이는 꼬마 아이가 와서 구두를 닦겠다며 무릎을 굽힌다.
측은해 보이는 마음에 어떡하지, 라고 생각하는 동안
그 아이는 이미 내 부츠에 구두약을 잔뜩 묻혀놓고 해맑게 웃는다.
'돈 이야기는 하지도 않았는데, 화를 낼 수도 없고...'
아이는 구두약이며, 광택제며 전부
장갑 하나 없이 맨손으로 문지른다.
그 모습이 너무 마음 아프다.
터미널에는 그 아이 뿐 아니라,
그 아이와 똑같은 도구상자를 들고 다니는, 나보다 나이가 많아보이는 청년이 있다.
이 아이가 학교에 가지 못 하는건 둘 째 치고,
나와 비슷한 나이가 될 때까지 맨 손에 구두약 묻혀가며 이 일만 하게 되는 숙명이란 게 있는 걸까,
라는 생각이 들어 더욱 마음이 안 좋다.
열심히 광을 낸 아이에게100파운드 지폐를 주고, 미소를 지었다.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는지,
아이는 신이 난 채로 무언가 계속 떠들며 돌아다닌다.
가방에 넣어놓고 배고플 때마다 꺼내 먹던 간식이 생각나서,
다시 아이를 불러 아이에게 건네 준다.
아이는 자기 형 쯤 되보이는 아이를 불러 그 시커먼 손으로 과자를 나누어 먹더니,
내 앞에 와서 발을 다시 내놓으라는 몸짓을 한다.
내가 이미 닦았다고, 괜찮다고 하는데도 막무가내다.
돈은 필요 없다는 듯한 시늉을 보인다.
더욱 열심히 광을 내는 아이 앞에서, 왠지 모르게 내가 한 없이 작아진다.
겨우 동정심을 느끼는 일밖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내가 미안하기도 하고.
생각이 많아지는 시리아에서의 밤,
나는 다음 도시 하마에 도착.
2011년 1월 2일 여행기, 끝
다음 글 - [trip to_ Middle East/Syria] - 시리아 (3) 아파미아(Apamea), 하마(Ha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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